발해 일본도는 발해의 도성에서 동해안 연안까지의 육로구간과 동해를 건너는 해로구간으로 나뉘어 연구되고 있다. 이 글의 목적은 발해 일본도 육로구간의 구체적인 교통로를 파악하는 것이다.
발해는 구국에서 현주, 상경, 동경, 상경으로 차례로 천도를 하였기 때문에 육로구간 출발지가 도성의 위치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발해 사절단이 파견된 제1차 727년은 구국시기에, 제2차 739년은 구국 혹은 현주시기에, 제3차 752년은 현주시기에, 제4차(758년)부터 제11차(779년)까지의 8회는 1차 상경시기에, 제12차 786년은 동경시기에, 제13차(795년)부터 제34차(919년)까지의 22회는 2차 상경시기에 각각 해당한다. 다시 말해서 발해 일본도의 출발지는 구국, 현주, 상경, 동경 4개소였다.
구국의 중심지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길림성 돈화지역으로 인식이 되어 왔었고, 구국도성과 관련된 유적으로 오동성, 성산자산성, 영승유적이 지목되어왔다. 하지만 오동성과 영승유적은 2002~2003년도의 발굴조사결과 발해의 유적이 아니라 금대유적인 것으로 밝혀졌다. 성산자산성도 구국의 동모산으로 보기에는 성 내부의 주거지역이 지나치게 협소하다는 의견이 제시된 바 있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에는 구국이 화룡의 서고성에 있었다는 의견, 돈화 북동쪽의 통구령산성과 석호고성에 있었다는 의견, 연길 동쪽의 마반촌산성(성자산성)에 있었다는 의견 등이 새로이 제시되었다. 하지만 진릉의 서원에 배장되었다는 문왕의 둘째 딸 정혜공주의 무덤이 육정산고분군에서 발굴되었기 때문에 아직은 구국의 중심지가 돈화지역에 있었다는 설이 더 타당해 보인다. 이미 밝혀진 바와 같이 중경 현주 시기 도성은 화룡 서고성, 상경성은 발해진 상경용천부유적, 동경 시기 도성은 훈춘 팔련성에 각각 있었다.
발해 일본도 육로구간의 종착지이자 해로구간의 출발지는 러시아 연해주 하산지구에 위치하는 크라스키노성임이 역사학적 및 고고학적 연구 성과에 의해 입증이 된 상태이다.
따라서 발해 일본도 육로구간의 구체적인 교통노선은 구국시기에는 돈화와 크라스키노성, 중경 현주시기에는 서고성과 크라스키노성, 1차와 2차 상경시기에는 상경성과 크라스키노성, 동경시기에는 팔련성과 크라스키노성 사이의 교통로에서 찾아야 한다.
발해 일본도 육로구간 각 출발지에서부터의 구체적인 교통 노선들에 대해서는 학계에 제기되어 있는 기존의 의견들, 새로이 발견 혹은 발굴된 발해유적들, 인공위성과 관련된 지리ㆍ지형 정보들 등을 면밀하게 검토한 다음에 새로운 의견을 제시할 수가 있었다. 발해 일본도 육로구간의 교통 노선은 국가를 대표하는 사절단이 가장 편리하면서도 안전하게 그리고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곳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 결과 구국시기 돈화지역과 크라스키노성 사이의 교통 노선은 “돈화 →대석두진 →부르하통하 상류 →석문 →중평 →토성둔고성 →태양고성 →장안 →부르하통하 최 하류 →송림 →알하하 최 하류 →도문 →온성→솔만자 →영안 →온특혁부성 →석두하자고성 →장령자 →크라스키노성”으로, 중경 현주시기 서고성과 크라스키노성 사이의 교통 노선은 “서고성 →용정 →연길 →연집 →장안 →도문 →온성 →솔만자 →영안 →온특혁부성 →석두하자고성 →장령자 →크라스키노성”으로, 1차 상경과 2차 상경시기 상경성과 크라스키노성사이의 교통노선은 “상경성→ (목단강과 경박호) →경박향 →저가고성 →오봉고성 →홍운건축지 →행복건축지 →석성고성 →(알하하 중상류) →낙타촌ㆍ 중대천ㆍ천교령건축지 →왕청 하북고성 →용천평고성 →송림 →도문 →온성 →솔만자 →영안 →팔련성 →석두하자고성 →장령자 →크라스키노성”으로 각각 새롭게 설정되었다. 동경시기의 교통로는 상경 시기 팔련성과 크라스키노성 사이 구간과 일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