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성호 이익의 『가례질서』와 『성호예식』의 방향성을 살펴보고, 그가 제시한 서인가례가 갖고 있는 문제의식이 무엇이었는지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것이다. 성호는 퇴계를 사숙하였고 근기 퇴계학파의 종장으로서 제자들을 양성하는 한편, 영남 남인과의 교류를 통해 퇴계학파의 일원으로서 퇴계의 철학과 사상을 진전시키고 확장하고자 하였다.
예학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성호는 퇴계의 예학을 계승하는 한편, 사계 김장생 등의 노론 예학자들의 학설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예설을 창출하게 된다. 그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것이 바로 『가례질서』와 『성호예식』이다. 특히 『성호예식』은 사대부 가문에서 행하는 예식의 토대가 되는 『가례』와는 그 성격을 달리하는 서인가례를 창출하여 가례시행의 확장을 도모한다. 이는 자신의 신분에 따른 것으로 『가례』를 근간으로 작성된 예식을 사대부의 예식으로 규정하고, 자신은 물론 서인의 신분에 있는 사람들의 예식을 별도로 규정하여 신분질서에 맞는 가례 서물을 작성한 것이다.
당대의 『가례』연구는 주희가 중년에 작성했다고 전해지는 『가례』를 이른바 만년정설을 찾아 보완하여 시행하고자 하는 것이 주류를 이룬다. 그리고 그것은 훈고와 고증 그리고 행례의 측면을 두루 감안한 것이다. 그러나 성호는 서인가례를 창출하여 사대부 이외의 필서들까지 행례할 수 있는 가례 서물을 작성하여 의례실천의 확장을 꾀하였다. 그가 대종과 소종의 일족들을 의례로 규합하고 종계를 만든 것 등은 그 가문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향촌 사회의 일반 백성들의 의례적 실천에 영향을 끼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