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비길은 러시아의 E.V.샤브꾸노프가 1985년에 발해와 여진의 유적들에서 발견되는 소그드-이란 계통의 유물들을 검토하면서 제기한 발해와 중앙아시아지역 간의 교역교통로이다. 그는 서기 1세기부터 중국에서 인기를 누렸던 ‘읍루 담비’가 7~10세기에도 여전히 수요가 대단하였고, 중앙아시아와 이란의 상인들이 중국을 통하지 않고 직접 만주와 아무르, 연해주 지역의 종족들에게서 초피를 구입하려 하면서 북방지역으로 새로운 교역교통로, 즉 담비길이 형성되었다고 보았다.
이 글에서는 먼저 초피의 생산지와 유통지역에 대해 살펴보았다. 초피는 읍루뿐만 아니라 나중에 발해의 영역에 포함된 부여와 동옥저, 숙신, 물길, 불열말갈 등에서, 그리고 서쪽으로 쉴까 강과 아르군 강 유역의 선비와 이후 실위에서, 또한 더 서쪽으로 예니세이 키르기스(힐알사)에서도 각각 생산되었음이 확인되었다. 발해의 초피는 일본과 당에서 크게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중앙아시아의 상인들이 발해의 초피를 직접 구입하였다는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예니세이 키르기스의 초피가 중앙아시아와 아랍지역으로 수출되었기 때문에 위구르에서 활동하였던 소그드 상인들이 이웃하는 실위와 더 동쪽의 발해에서 초피를 구입하였을 가능성은 매우 높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음에는 담비길의 구체적인 노선에 대해 살펴보았다. E.V.샤브꾸노프는 담비길의 노선을 ‘세미레치예 - 알타이산맥 - 서몽골 - 셀렝가 강 유역 - 오르혼 강 상류지역 - 톨라 강 상류지역 - 헤룰렌 강과 오논 강 상류지역 - 쉴까 강과 아르군 강 - 아무르 강 - 아무르 강 지류들을 따라 동북아시아의 깊숙한 지역들까지’로 파악하였다. 그가 세미레치예를 소그드 상인들의 출발지로 본 것은 서기 5~6세기부터 이 지역에 소그드인들이 집중 거주하였기 때문이었다. 이 글에서 알타이산맥을 지나는 길들을 구체적으로 확인하였다. 셀렝가 강 유역에는 756년에 위구르 모엔초르(Moyen-Chor) 가한의 명령에 의해 소그드인들 등이 쌓은 바이-발릭성이 있고, 오르혼 강 상류지역에는 수 천 명의 소그드 상인들이 거주하였던 위구르 한국의 수도 하라발가스가 위치한다. 다음으로 여러 강들을 차례로 지목한 것은 이 강들이 오호츠크 해와 동해까지 갈 수 있는 수로이기 때문이다.
아르군 강과 아무르 강 유역에서는 소그드 관련 유물들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또한 쉴까 강과 아무르 강 유역에서는 ‘말갈’ 유적들이, 위구르 지역과 아무르 강 유역에서는 ‘콧수염’ 무늬 심발형 토기들이 각각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다음에는 발해지역에서 발견되는 소그드인들의 흔적에 대해 살펴보았다. 연해주의 노보고르제예브까 취락지는 발해시기 소그드인들의 거류지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유적에서 발견된 토기와 중앙아시아지역의 소그드 토기들에는 동일한 형태의 문양들이 확인된다. 그 외에도 발해지역에는 사산조 청동거울, 소그드 은화, ‘룬’ 문자 강돌, 토제 의례용기, 쌍봉낙타 뼈, 청동 쌍봉낙타상, 동심능형문양, 바르간, 서아시아 신장상, 사리함 유리병 등등 중부-중앙아시아지역과 관련된 유물들이 다수 발견되었다.
이 사실들은 발해시기에 발해와 중앙아시아지역을 서로 연결하는 교역교통로가 실제로 작동하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음을 보여준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