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영・정조 대에 교서관 교리와 북청부사 등을 역임한 成大中(1732~1809)은 조선 후기 史上 서족 출신으로 가장 높은 품계에 오른 인물이다. 그 배경에는 순정한 학식과 필법을 구사하여 정조의 知遇를 입은 것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런데 순정한 문체만큼 주목해야 할 것이 그가 ‘學의 用’과 ‘文의 敎’를 강조한 점이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성대중의 實用에 대한 認識을 바탕으로 實心實政을 행하여 時弊를 구제하는 데 주력한 사실을 구체적으로 확인하였다. 성대중은 연행하는 이를 전송하면서 비록 오랑캐의 나라이긴 하지만 삼대 예악의 옛터인 만큼 書籍과 測候, 兵刑田郭 제도와 같은 선진 문물을 수용하여 저들의 장점을 취하고 우리의 단점을 공격하여 自强의 방책으로 삼을 것을 당부하였다. 또 울진・흥해・북청 등의 지방관으로 재임하면서 戶錢法을 시행하여 군역의 폐단을 제거하는 등 지속적이면서 적극적으로 實政에 임하였다.
요컨대 성대중의 ‘實用’의 궁극적 목표는 세상의 교화 즉 ‘經世學’인 것이다. 이를 통해 六經을 근본으로 하여 古를 지향하는 등 복고적 문학론을 견지한 것과는 다른 층위에서 實心實政을 통한 實用과 經世學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갖고 실행한 인물로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