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의 시각에서 한반도안보를 유지하려는 관성적 안보인식으로 인해 종전선언은 정치적 성격의 선언으로 추진되고 있다. 따라서 종전선언이 한국전쟁 당사국 정상들이 서명하는 문서의 형식으로 체결되더라도 국제법적인 조약이 될 수는 없다. 이는 종전선언의 당사자 입장에서 법적인 종전선언으로 인한 급격한 근본적 안보환경의 변화를 제어하고, 주변국의 한반도에 대한 이해관계와 기득권을 유지하도록 하면서도 현행의 냉전적 법제도의 개폐에 관한 논의를 본격화할 수 있는 정치적 정당성이 근거를 마련하려는 주관적 의도가 반영된 결과이다. 하지만 정치적일지라도 당사자 간에 종전에 대한 합의가 공식화되면 법적으로 종결되지 않은 한국전쟁의 종식, 한국정전협정체제 해체, 남북한에 내재화되어 있는 냉전적 국내법제의 근본적인 개선 등과 같은 후속 조치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수반되어야 한다.
결국 한국전쟁의 종전선언이 이루어지면 한국정전협정이 전쟁의 존재를 전제로 규정하고 있는 군사분계선(MDL)과 비무장지대(DMZ),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감독위원회를 대체하는 제도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며, 동시에 한국전쟁을 근거로 설치된 UN군사령부(UNC)의 정치군사적 정당성의 근거도 소멸하기 때문에 UN군사령부의 해체 이후 한반도와 동북아 안보를 위한 UN차원의 새로운 한반도 평화기구 설치가 논의되어야 한다. 또한 남북한 국내법제의 정비, 남한의 입장에서는 헌법의 영토규정을 포함한 헌법의 규정 그리고 국가보안법과 북한이탈주민보호법 등 북한의 국가성을 부정하고 반국가단체로 간주하여 제정된 법제의 개선이 필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문제의 독특한(sui generis) 성격을 반영한 정치적 종전선언은 전쟁법에서 평화법으로 전환되는 시기의 음영지대에서 역할하는 연성적 전후법(jus post bellum)으로서 의미가 있다. 종전선언은 통일을 지향하는 국가적 실체로서 남북간 관계의 독특성과 승자도 패자도 없는 한국전쟁 결과의 독특성 그리고 종전을 통해 전쟁 전 질서의 회복이 아니라 현존 질서의 유지와 평화를 위한 다음 단계로의 전환을 도모하는 창의적 방안으로서 “(가칭)한국문제의 최종적인 평화적 해결에 관한 합의서”의 체결을 포함하는 평화협정체제의 구축을 지향해야 한다. 한국전쟁 종전선언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소극적 평화단계를 규율하는 법적 문서들의 체결을 목표로 하는 정치적 합의문서이며, 평화협정체제를 구성하는 법적인 합의문서들을 도출하는 협상의 플랫폼으로서 안정적인 한반도평화협정체제가 구축되면 그 기능을 상실하고 소멸하는 잠정성을 갖는 독특성을 갖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