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신앙은 관음신앙이나 지장신앙 등과 같이 신앙의 대상이 한 분이 아니다. 16나한, 18나한, 500나한 및 나반존자까지 포함하면, 신앙대상의 숫자가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때문에, 운문사를 비롯한 거조암과 기림사 등의 나한전에는 16나한과 500나한의 존상이 함께 봉안되어 있다. 본고는 이 나한신앙들의 성격이 동일한 것인가라는 의문에서 출발하였다.
우선, 『大阿羅漢難提蜜多羅所說法住記』(이하, 『법주기』)를 소의경전으로 하는 16나한신앙의 성립을 두 가지 측면에서 고찰하였는데, 하나는 ‘16’의 숫자이며, 다른 하나는 16인의 상수에 관해서이다.
경전에 나타난 ‘16’과 관련한 인물에 대한 용어는, ‘16재가보살’, ‘16현사’, ‘16정사’ 등이다. 이들 용어와 16나한 성립의 관련성은, ‘16’이라는 숫자의 공통성과 이들의 상수인 발타바라가 16나한에서는 제6존자로 상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16나한의 상수는 발타바라가 아닌 빈두로라는 점에 유의해야한다.
빈두로사상은 『법주기』 성립 이전부터 존재하였지만, 5세기에 한역된 『입대승론』과 『치선병비요법』 등에는 빈두로를 대승이 아닌 성문이라고 설한다. 그런데, 학자들은 『법주기』가 소승적 성격으로 독립된 신앙이었던 빈두로신앙을 대승적으로 발전시켰으며, 나아가 나한의 개념도 대승적으로 변화시켰다고 주장한다. 이 견해들은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빈두로가 성문의 성격을 지니기 때문이다.
빈두로는 호법과 복전이라는 두 가지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의 호법은 붓다의 꾸짖음과 4대성문 이라는 두 가지 측면이 있지만, 500나한과 함께 봉안된 16나한은 복전보다는 호법의 성격을 강조하고 있다고 본다.
500나한은 붓다의 재세시는 물론 전생담에도 자주 등장하여, 붓다와 다양하고 밀접한 관련성을 지닌다. 그러나 본고는 16나한을 함께 봉안하는 500나한의 성격을 붓다 열반 후 제1차 결집과 관련하여 규명하였다. 즉, 법장을 결집한 500나한인 것이다.
이상과 같이, 16나한은 호법의 상징이며, 500나한은 법장의 결집이라고 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한국 사찰에서는 500나한전에 16나한을 함께 봉안하고 있는 것이다.
본고에서는 한국 나한신앙의 특징인 나반존자신앙에 대한 고찰은 생략하였다. 이는 향후의 과제로 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