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구 기록의 부실화 현상은 17·18세기 호적대장에서 예견된 상황이었다. 물론 시기·지역·가문에 따라 부실의 편차는 있지만 19세기에 들어가면서 호적대장의 부실 정도는 심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학계에서는부실 정도를 호적자료를 통해 가늠만 할 뿐 구체적인 실상은 확인하지못하는 실정이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최근 발굴한 자료를 토대로 19세기 중반 호구단자의 부실화 정도를 확인해보고자 하였다. 연구방법은 동일 가문에서 생산된 호구단자와 개인 일기를 상호 대조·검토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이에 다음의 세가지 사항이 확인되었다. 첫째로, 19세기 중반 김호근가의 호구단자에 나타난 노비명과 일기에 기재된 노비명과 비교해 본 결과, 노비명의 일치율은 0%로 나타났다. 물론 일기의 노비명이 모두 노비이름이 아닐 수도 있지만, 양 자료의 시차가 불과 8~9년밖에 되지 않은시점에서 노비명이 하나도 일치 않는다는 것은 의외의 결과라 하겠다.
이와 같은 결과는 18세기 말~19세기 초 호적대장의 노비명이 30~40% 만이 실재와 일치한다는 기존의 연구보다 더 극단적인 수치이다. 이 사례는 학계에서 추정하는 것 보다 19세기 중반 호적의 형해화 현상은 상당히 진전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둘째로, 기존 연구에서는 호구단자에 나이가 기재된 사람은 실존 인물이고 나이가 기재되지 않은 노비는 허구의 인물로 추정하고 있는데, 본자료에서는 이에 반하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辛酉式 호구단자의 경우노비들의 나이까지 기재된 것이므로, 기존 연구에 따르면 실존인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과 일기와의 노비명 일치율은 0%이다.
따라서 이러한 추정에 대한 학계의 재검토가 필요하다.
셋째로, 기왕의 연구에서는 19세기에 들어가면서 노비의 수는 급감하며, 호적대장에 등재되는 노비의 수도 현저히 떨어진다고 보고 있다. 특히 단성호적에서처럼 19세기 중반부터 실제 노비를 보유하지 못한 호라도 마치 노비 1구를 보유하고 있는 것처럼 기재하는 관행이 자리 잡고, 다른 지역에서도 노비의 수는 5구를 크게 넘지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본 호구단자에 기재된 31구의 노비수는 기존 연구와는 다른 또 하나의 사례로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19세기 노비 해체설에 대해 세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