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백제기 대표적인 조상제사는 동명묘 배알이다. 동명묘의 주신은 부여 시조 동명이다. 대체로 즉위 2년 정월에 동명묘에서 치제되며, 관직임명이나 대사면이 동시에 베풀어진다. 동명묘 배알은 부여계 세력을 하나로 결집하려는 목적에서 행해졌다. 백제는 북방 유이민 집단에 의해 건국되었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토착적 기반이 약하다. 또한 한강유역의지리적 이점으로 말미암아 한 토착세력, 중국 군현세력, 고구려 등에 견제를 받아왔다. 외부의 위험은 내부적인 결속을 필요로 하였고, 동명묘배알은 정신적 구심점으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한편 백제는 오랜 기간 왕과 귀족세력간이 긴장관계를 유지하며 발전해왔다. 특히 해씨, 진씨로 대표되는 부여계 귀족세력은 왕실과 유착하며 세력을 공고히 하였다. 왕실 입장에서는 이들 세력과의 우호관계를 통해 왕권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 면에서 동명묘 배알은 부여계 귀족세력를 융합하는데 용이하였다. 백제 왕실의 건국시조를 대신하여 동명묘 배알이 한성기 내내 유지된 데에는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