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목적은 조선 중기에 4대 사화(무오·갑자·기묘·을사 사화)에 대한 피해자의 신원·추증 문제를 둘러싸고 치열하게 전개된 정치적 논쟁을 현대의 과거사 정리와 관련된 이론을 적용함으로써 전통시대의 정치와 현대 정치에 대한 비교 사상적 분석을 시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조선 정치사 연구에 현대의 정치이론인 ‘과거사 정리’라는 개념을 적용할 수 있는지 검토했다. 검토를 통해 현대의 과거사 정리와 비교할 때, 이념적 기반, 논의 주체 및 참여자의 범위 그리고 정책결정과정 등에서 의미심장한 차이가 있지만, 전통시대인 조선시대에서도 그 나름의 원칙과 절차 및 정치사회적 합의에 기반하여 과거사 정리를 추진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특히 조선시대의 과거사 정리를 이끈 유교 정치이념의 헌정적 원칙이나 규범으로 도통 개념에 입각한 정의 개념에 주목했다. 조선시대 주자학자인 사림은 왕통과 도통의 분리를 전제로 정치의 올바른 방향을 실질적으로 담지하고 있는 주체는 왕통을 물려받은 국왕이 아니라 도통을 전수받은 자신들이란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과거사 정리를 통해 사림파는 왕통을 세습한 국왕이 도통을 계승한 주자학자들을 국정의 동반자로 삼아 공론에 의거하여 정치를 해야 한다는 군신공치(君臣共治) 사상을 헌정적 원칙으로 확립하는 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