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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실사구시'의 다양한 층위와 학적 지향 / 최식 1

국문요약 1

1. 문제 제기 3

2. 19세기 한학과 '실사구시' 6

1) 한학의 성행과 한송절충론 6

2) '실사구시'의 형성과 영향 10

3. '실사구시'의 다양한 층위와 학적 지향 16

1) 실용실천의 '실사구시' 17

2) 한송절충의 '실사구시' 21

4. 남는 문제 25

참고문헌 27

Abstract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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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9세기 청조의 학술과 문예의 동향이 당시 조선 학계에 ‘實事求是’의 담론 형성에 밀접한 연관이 있음에 주목한다. 특히, 1815년을 전후한 무렵 ‘실사구시’에 대한 학술적 담론에 해당하는 자료는 19세기 ‘실사구시’의 다양한 층위와 학적 지향을 시사한다.

당시 漢學의 성행은 조선 중앙학계에서 漢宋 論爭으로 비화되고 漢宋折衷論으로 그 접점을 찾아간다. 그 무렵 金正喜는 1809년 연행을 계기로 청조의 翁方綱?阮元 등과 편지를 왕래하며 학술적 교류 성과를 ?實事求是說?로 집약하는데, 이는 옹방강과 완원이 주장한 ‘실사구시’의 내용을 상당부분 수용한다. 다른 한편, 고증학에 상당히 경도되었던 李正履는 ‘실사구시’에 착안하여 서재를 ‘실사구시재’로 명명하고 洪奭周와 洪吉周에게 글을 청한다. 그러므로 이정리가 ‘실사구시재’로 이름 짓고 ??에 대한 상당한 관심을 갖은 것은 추사가 ?실사구시설?을 짓고 <魯禮??志>를 편찬한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19세기 ‘실사구시’의 담론은 크게 두 가지로 방향에서 전개되는데, 하나는 實用實踐의 ‘실사구시’이고, 다른 하나는 漢宋折衷의 ‘실사구시’이다. 이는 이정리의 ‘실사구시재’와 김정희의 ‘실사구시설’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홍석주는 ‘실사구시’를 ‘務實求是’로 바꾸어, 공소한 송학의 폐단과 지엽에 치우친 고증의 말폐를 비판하고 학문의 실용과 실천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홍길주 또한 ‘실사구시’를 독서의 실용과 실천을 중시하고 추상적?관념적 내용에서 벗어나 현실의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실질적 방향으로 인식한다. 이들은 ‘실사구시’를 실용실천의 측면에서 인식한다.

반면, 김정희는 ‘실사구시’를 송학의 공소함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한학의 정밀한 훈고를 實事로 보며, 한학의 명물훈고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송학의 의리탐구를 求是로 본다. 이는 옹방강의 편지에서 한학과 송학을 절충하려는 견해와 ?실사구시잠?의 ‘?實在書, 窮理在心’, 그리고 완원의 ?擬國史儒林傳序? 내용과 관련이 깊다. 또한 홍석주의 주장과 ?五學論? 중 성리학과 훈고학에 대한 정약용의 비판과도 연관된다. 따라서 ‘실사구시’는 옹방강과 완원 등 청조 학술과 문예의 최신 동향을 착실히 수용하는 漢宋折衷의 성격으로 조선 학계의 학문적 성과를 일정정도 반영한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pay attention to and reveal close relation between the tendency of academy and literature of Ching Dynasty in the 19th century and formation of discourse of ‘Shilsagushi’ in the contemporary Joseon academia. In particular, The materials related to academic discourse regarding ‘Shilsagushi’ in around 1815 suggests us its orientation to diverse stratigraphies and academic register of ‘Shilsagushi’ in the 19th century.

At that time, the incident of prevalence of Chinese classics Joseon created a problem of Han and Song argument in the central academia approaching its solution with Hansongjulchoongron. At around that time, Kim Jung-hee exchanged messengers with Weng Fangkang, Juan Yuan, etc of Ching Dynasty taking Yeonhaeng in 1809 as an opportunity academic and finally integrated outcome of exchange into ?Shilsagushiseol?, which accepted significant part of ‘Shilsagushi’ asserted by Weng Fangkang and Juan Yuan. In the meantime, Lee Jung-ree who was rather attached to documental archeology took notice of ‘Shilsagushi’ and names his library ‘Shilsagushijae’ and asked for writings of Hong Seok-ju and Hong Gil-ju. Therefore the fact that Lee Jung-ree named his library ‘Shilsagushijae’ and paid great attention to Chehyup has, I think, something to do with the fact that Choosah wrote ?Shilsagushiseol? and compiled .

The discourses of ‘Shilsagushi’ in the 19th century had been generally developed in two ways, one is Shilyongshilchun ‘Shilsagushi’, the other is Hansongjulchoong ‘Shilsagushi.’ These also had something to do with Lee Jung-ree's ‘Shilsagushijae’ and Kim Jung-hee's ‘Shilsagushiseol.’

Hong Seok-ju changed ‘Shilsagushi’ into ‘Mooshigushi’, and he criticized negative effects of Scholia sided to minor part as well as those of Songhak and made way for practical use of and practice of academy. Hong Gil-ju also put the most importance on practical use of reading and its practice as far as ‘Shilsagushi’ was concerned. Moreover he emphasized the face that it should be developed in the way that could be carried out in a daily life escaping from abstract and ideological state. They in all recognized ‘Shilsagushi’ from the apsect of Shilyongshilchun.

In the meantime, Kim Jung-hee thought of precise history research of Chinese classics as Shilsa, as a way to overcome Gongso of Songhak, and deemed Uiritamgu of Songhak as Gushi to cope with speciality Scholia of Chinese in ‘Shilsagushi’. This is deeply concerned with the expression of opinions that he tried to comprimise Chinese classics and Songhak in a letter of Weng Fangkang and in s ‘Hakshiljaesuh, Goongrijaeshim’, and Juan Yuan's ?Uiguksayurimjunsuh?. In addition, it has something to do with Yang Yong Jung's criticism about Neo-Confuciansim and Exegetics among Hong Seok-ju's assertions and ?Ohakron?. Accordingly, ‘Shilsagushi’ steadily accepted latest trend of academy and literature of Ching Dynasty such as that of Weng Fangkang and Juan Yuan, which wa featured in Hansongjulchoong and partly reflected academic performance of Joseon academ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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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44건) : 자료제공( 네이버학술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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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참고문헌 국회도서관 소장유무
1 金邁淳, 臺山集 , 한국문집총간 294, 민족문화추진회. 미소장
2 金正喜, 阮堂全集 , 한국문집총간 301, 민족문화추진회. 미소장
3 洪吉周, 峴首甲藁 ․ 縹礱乙㡨 ․ 沆瀣丙函 , 연세대 도서관. 미소장
4 洪奭周, 淵泉集 , 한국문집총간 293․294, 민족문화추진회. 미소장
5 成海應, 硏經齋集 , 한국문집총간 273~279, 민족문화추진회. 미소장
6 丁若鏞, 與猶堂全書 , 한국문집총간 281~286, 민족문화추진회. 미소장
7 阮 元(1993), 揅經室集 , 中華書局. 미소장
8 翁方綱(1969), 覆初齋文集 , 文海出版社. 미소장
9 翁方綱, 覃溪赤牘 , 선문대 박물관. 미소장
10 翁方綱, 覃溪手札帖 , 서울대 도서관. 미소장
11 국립중앙도서관 편(2006), 秋史 김정희: 學藝 일치의 경지 . 미소장
12 과천문화원 편(2007), 후지츠카 기증 추사자료집Ⅲ: 秋史와 韓中交流 . 미소장
13 과천문화원 편(2008), 후지츠카 기증 추사자료집Ⅲ: 후지츠카의 추사연구자료 . 미소장
14 유홍준(2002), 완당평전 3: 자료 해제편 , 학고재. 미소장
15 김명호(2008), 환재 박규수 연구 , 창비. 미소장
16 김문식(1996), 朝鮮後期 經學思想硏究: 正祖와 京畿學人을 중심으로 , 일조각. 미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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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임형택(2000), 실사구시의 한국학 , 창작과비평사. 미소장
19 최 식(2009), 조선의 기이한 문장: 항해 홍길주 산문 연구 , 글항아리. 미소장
20 藤塚鄰 著(1994), 朴熙永 譯, 추사 김정희 또다른 얼굴 , 아카데미하우스. 미소장
21 藤塚鄰 지음(2009), 藤塚明直 엮음, 윤철규 외 옮김, 秋史 金正喜 硏究: 淸朝文化 東傳의 硏究 , 과천문화원. 미소장
22 金正喜의 實學思想과 靑代 考證學 소장
23 洪奭周의 經學思想 硏究 소장
24 김문식(1993), 성해응의 경학관과 대중국인식 , 한국학보 70, 일지사. 미소장
25 김새미오(2009), 淵泉 洪奭周 散文 硏究 , 성균관대 박사논문. 미소장
26 秋史 金正喜의 學問觀 소장
27 Special Issue : Review of the 19th century Korean Literature in Classical Chinese ; The Study on the notion of "Sil" in the nineteenth century 소장
28 淵泉 洪奭周의 實學思想에 대한 硏究 : 實用主義的 學問觀을 중심으로 소장
29 박동원(1983), 阮堂과 實事求是說 , 광주교육대학논문집 23, 광주교육대학. 미소장
30 秋史 金正喜의 著作 현황 및 詩文集 編刊에 대하여 소장
31 朝鮮朝 後期 學術의 考證學的 性格 소장
32 손팔주(1977), 신자하의 소악부 연구 , 동악어문논집 10, 동악어문학회. 미소장
33 손혜리(2005), 硏經齋 成海應 散文의 硏究 , 성균관대 박사논문. 미소장
34 秋史 金正喜와 考證學 소장
35 Kim Jung-Hee's scholarly activity 네이버 미소장
36 Reconsideration of Kim Jeong-hee(1786-1856) and Korean Silhak 소장
37 추사의 주자학에 대한 태도 소장
38 Articles : A Study on "the Quest for the truth from Actualities" in the scholarship of Kim Jurng Hi 소장
39 김정희 사상에 나타난 실학관의 논리 구조 문제 소장
40 The Study on the Eclecticism between Han and Sung's Academic Methods of Kim Jung-Hee 소장
41 淵泉 洪奭周의 學問精神과 古文論 소장
42 A Study on Academic Theory of Chusa Kim Jeong-hee 소장
43 淵泉 洪奭周의 학문성향과『대학』해석의 특징 소장
44 A bibliographical study of Chinese classics and Hong Gil-Ju's ?Eui-bal-chaek?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