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다산 『중용강의보』에 기록된 다산 초년의 條對와 정조 『경사강의』에 수록된 御問 및 다른 講員들의 條對를 상호 비교한 것이다. 정조는 『중용』 1장의 天命之性 및 率性을 해석하면서 工夫論을 함축한 대목으로 이해했는데, 이 같은 정조 질문에 다른 강원들은 모두 주희 『장구』대로 답하면서 비판했지만 당시 태학생 신분이었던 다산은 오히려 정조와 유사한 답안을 내놓았다. 뿐만 아니라 未發에 대해서도 정조는 喜怒哀樂이 없을 뿐 思慮云爲는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 역시 다산의 입장과 유사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중용』의 鬼神에 대한 해석, 至誠과 聖人의 성격에 관한 논의에서는 오히려 노·소론계 학인들과 정조 입장이 유사했던 반면, 다산의 견해는 당시로서는 매우 이질적인 것이었다. 사실 『중용』에 대한 다산의 독특한 관점은 초년에는 이벽을 통해 西學을 접하면서 형성된 측면도 있었지만, 본 논문에서는 그보다는 정조와의 경전에 대한 講論에서 엿보이는 학문적 영향 관계에 주목해서 논의를 전개했다. 다산은 다른 강원과는 분명히 다른 입장을 표명하면서도, 유독 정조와는 비슷한 성격의 주장을 피력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기존에 정조와의 관련성을 해명한 논문도 물론 있었지만, 經史講義 중에 나타난 『중용』에 관한 철학적 입장을 직접 비교한 경우는 없었기에 본 논문에서는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해명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