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일강의 집배에서 태어나 ‘나일강의 시인’으로 불렸던 하피드 이브라힘은 가난한 어린 시절과 어려운 청소년기를 거쳤다. 그는 훌륭한 군인이며 시인이었던 바루디를 흠모해 군사학교를 다녔으며, 졸업 후 이집트, 수단에서의 10여년(1888-1903)에 걸친 군(軍) 생활을 했다. 전역한 이후 약 10년 동안(1903-1911)은 직업 없이 경제적 곤란 속에 살아야만 했다. 그는 이 시절 동안 앞장서 대중들을 선동하고 봉기를 촉구하였으며, 사회적ㆍ정치적 사건들을 단순하지만 친근한 리듬감으로 솔직하게 표출하였다. 특히 1906년 딘샤웨이 사건에 대한 대중들의 참담한 심정을 솔직하게 표출함으로써 대중들의 사랑을 받으며 ‘대중의 시인’이란 별칭을 얻었다. 이후 20년 동안(1911-1932)의 국립도서관 생활 동안에는 직업 상실과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두려움으로 작품 활동을 절제한 삶을 살았다.
어렵고 불행한 삶으로 인해 그의 시는 대체로 우울한 정서를 담고 있으며 가끔은 불평불만으로 가득 차기도 하였다. 그는 찬양시, 묘사시, 사랑시(가잘)등 전통적인 주제들을 다양하게 다루었으나 주로 사회 정치시에 몰두했으며, 무엇보다 가장 빛을 발한 것은 애도시에서 였다. 이는 그의 고단하고 슬픈 삶의 여정과 무관하지 않은 까닭이다.
선배 신고전주의 시인인 바루디를 흠모해 삶과 시에서 그를 닮으려고 노력했던 하피드 이브라힘은 비행기나 기차와 같은 현대 문명의 산물을 다루는 등 시대정신과 현대 문명으로 시의 지평을 넓히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작품들에서 단일운과 단일율격의 고전시 형식을 고수함으로써 전통 마까마 형식의 산문시인 「사띠흐의 밤들」에서 보여주었던 그의 혁신 노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당시에 발생했던 사회적, 정치적 사건들을 다룸으로써 단순히 고전시 대가들의 무조건적인 모방에서 탈피하는 주제의 혁신을 보여주었다.
결론적으로, 하피드 이브라힘은 고전 까시다 형식을 통해 딘샤웨이 사건이나 케디브의 즉위와 사임, 유명 인사들의 죽음에 대한 애도 등 당시에 일어난 정치적, 사회적 사건들을 다루었던 ‘대중의 시인’이었다. 또한 하피드 이브라힘은 단순하고 솔직하며 리듬감 있는 선언의 시어를 통해 이집트, 아랍세계, 이슬람 민중의 마음을 시원하게 표현했던 ‘대변인’ 이었다.??fi? Ibr?h?m was the one among the best-known neo-classists with A?mad Shawq? and Ma?m?d S?m? al-B?r?d? in the Arab world. He was often described as 'the people's poet' because he wrote much of his poetry about the suffering of the people and about nationalistic themes. Also he was called as 'Poet of the Nile' because he was bone in the house-boat of the Nile.
Actually ??fi? Ibr?h?m composed poems of the traditional type such as panegyric, elegy, description, love and wine. Especially he excelled elegy. ??fi? wrote some of the best-known of the elegies produced on the deaths of public figures such as Mu?ammad ‘Abduhu, Mus?af? K?mil and Sa‘ad Zaghl?l. He sees them not only as individuals, but also as representatives, Mu?ammad ‘Abduhu of rejuvenated Islam, Mus?af? K?mil and Sa‘ad Zaghl? of reawakened Egypt. And he particularly emphasized the sufferings of the poor and the victims of natural disasters. In this respect he was a spokesman of Egypt, Arab and Isl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