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심사는 전남 신안군 지도읍에 있는 조그마한 절이며, 전통사찰 제83호로 등록되어 있다. 이 절에 높이 42cm의 작은 목조보살좌상이 봉안되어 있는데 최근에 이 불상에서 발원문을 포함한 복장물이 발견되었다.
발원문에 의하면 이 보살상은 1671년(조선 현종 12)에 백양산 청심대에서 아미타불삼존상의 하나로 조성되었으며, 어느 때인가 현재의 일심사로 옮겨져 봉안되고 있다. 이 불상을 조성한 공덕으로 모든 스님들과 중생들이 함께 불도를 이루기를 바라고 삼보에 귀의하기를 빌며 왕실의 수복과 안녕을 발원하고 있다. 발원문에 등장한 승려는 모두 17인으로 시주자 元惠와 覺軒, 대선사 善河, 대사 義均과 惠能, 지사 戒英, 별좌 戒行, 증명 惠還, 공양주 坦祐와 明善, 화사 海澄 등은 당시 주로 호남지방에서 활동하였다.
이 불상을 조성한 조각가는 應惠와 戒贊으로 이들은 17세기 전반에 크게 활동하였던 淸憲과 勝日 밑에서 조각을 수련한 후에 17세기 후반에 전라도와 경남 지역에서 주로 활동하였던 조각가들이다. 응혜의 작품 도상 특징은 양손을 모두 무릎에 닿을 정도로 내려 엄지와 중지를 맞댄 중품하생인을 선호하고 있는데 일삼사 보살상 역시 같은 도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응혜의 작품으로 보살상이 3점 알려져 있는데 모두 통견이며, 裙衣 상단인 가슴 부위에 연화형으로 처리하지 않고 넓은 일자형 띠로 처리하였고, 법의가 대좌를 덮은 상현좌를 취하고 있는 점이 또한 특징이다.
조선 후기는 임란이란 큰 전란을 겪은 시기로, 전란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불교계 역시 많은 사찰들이 화재로 소실되어 17세기 전반부터 복원 작업이 전국적으로 이루어지면서 불교 조각 역시 활발히 전개되어 오늘날 각 사찰에서 이 시기에 해당하는 불상들을 실견할 수 있다. 일심사에서 봉안하고 있는 목조보살좌상은 비록 소형이지만 17세기에 활동하였던 응혜라는 조각 장인의 작품이다. 응혜는 현재까지 크게 주목받지 못한 조각가였으나 최근에 백양사 성보박물관과 신안 일심사에서 그의 작품이 봉안되고 있는 점이 확인되어 17세기 후반에 한 유파를 형성하였던 조각가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응혜는 淸憲과 勝日 등에게서 수련을 받은 조각가였으며, 印戒, 海機, 雷侃, 戒贊 등의 장인들과 함께 17세기 후반에 활약하였던 장인이다. 그러므로 17세기 불교조각과 그 맥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장인으로 분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