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정빈과 김상준에 의해 세워진 한국성결교회는 1921년 기성교단으로 전환되며 장로교, 감리교와 함께 이 땅에서 큰 역할을 감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1961년 교단 분립의 진통을 겪게 되었고 예수교대한성결교회와 기독교대한성결교회로 나뉘어져 각 교단의 신학사상을 정립하며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예수교대한성결교회는 사중복음의 신앙적 유산을 대체적으로 계승한 반면, 기독교대한성결교회는 웨슬리신학을 바탕으로 교단 신학이 발전되었다. 하나의 뿌리에서 시작된 성결교회는 2007년 성결교회 100주년을 앞두고 신학적 사상의 일치와 연합을 위한 연구와 교류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100주년을 넘어 115년이 되는 지금도 신학적 정체성 정립과 일치는 이루어지지 않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본 연구는 한국성결교회가 일치와 연합을 이루는 데 나타나고 있는 신학사상의 문제점들이 무엇인지 역사적 사료의 비교와 분석을 통하여 연구하였다.
본 연구는 전도 표제를 넘어서 성결교단의 중심 교의인 사중복음이 어떻게 전래 되어 왔는지 그 과정과 그리고 그것이 성결교단의 중심적 신학사상으로 왜 주장되어야 하는지를 밝히기 위해 19세기 성결운동을 통해서 신학적 맥락을 찾고자 하였다. 먼저 존 웨슬리의 부흥운동과 만국성결교회와 마틴 냅(Martin Knapp)으로 시작하여 기독교선교연합회와 사중복음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심프슨(A. B. Simpson)의 영향이 성결교단의 순복음(사중복음) 사상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았다. 또한 동양선교회의 태동과 발전, 나카다 쥬지와 킬보른(E. A. Kilbourne)의 신학사상을 통하여 확립된 동양선교회의 신학사상을 살펴봄으로 성결교단의 신학적 형성이 웨슬리신학보다는 사중복음에 있음을 논하였다.
선교회 형태의 동양선교회 복음전도관은 1921년 기성교단의 형태인 '조선야소교 동양선교회 성결교회'로 전환되었고 여전히 사중복음의 신학적 유산을 교단의 교리적 강조점으로 주장하였다. 그러나 초기 성결교회의 신학은 완전한 형태를 갖추지는 못하였다. 사중복음이 성결교단의 교리 형성을 위해 김상준은 사중복음에 대한 신학사상을 확립시키는 데에 큰 역할을 감당했다.
1946년 해방 이후, 교단이 재건되며 6.25 한국전쟁을 거치는 동안 교리적인 발전의 진전이 없었다. 1961년 예수교대한성결교회와 기독교대한성결교회로 분립 되었다. 분립 이후 양분된 성결교회는 서로 다른 시각과 신학적 정체성을 강조하며 발전하게 되었고, 그것은 양 교단의 헌장과 헌법에 잘 반영되어 나타난다. 먼저 기독교대한성결교회는 웨슬리신학을 중심으로 발전되었고, 사중복음은 전도 표제로 여기며 교리와 신학적 체계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교대한성결교회는 웨슬리신학의 관점보다 동양선교회의 신학적 유산인 사중복음을 교리와 신학적 체계로 받아들이는 차이가 나타난다.
한국성결교회가 일치와 연합을 위해서는 웨슬리신학과 사중복음의 신학적 입장에 대한 분명한 신학적 정리가 필요하다. 따라서 본 연구는 성결교단의 신학을 역사신학적 입장에서 분립 된 양 교단을 이해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신학적 입장을 대표하는 신학자로 이명직, 조종남, 한영태 그리고 박명수를 살펴보았고, 예수교대한성결교회의 신학적 입장을 대표하는 신학자로 김응조, 손택구, 이성주 그리고 정상운의 신학적 입장을 연구하였다. 이러한 연구 작업은 양 교단의 신학적 발전과정을 살펴볼 뿐 아니라 미래적 일치와 연합이라는 지향점에서 매우 중요하며, 양 교단의 신학적 차이를 좁히는 학문작업과 사중복음의 신학적 가치 그리고 성결교회의 설립 목적에 부합한 사중복음 안에서 일치와 연합이 이루어져야 하는 당위성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이러한 연구 목적과 필요성을 가지고 내린 연구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초기 한국성결교회는 신학적이고 교리적인 교파로서 설립된 교단은 아니었다.
한국성결교회의 창립자였던 정빈과 김상준은 일본 유학시절 자신들이 배워 온 사중복음을 설립 정신으로 표방하였고, 사중복음에 대한 복음주의 선교적 열정을 가지고 그 사명을 감당하였다. 또한 동양선교회의 설립 목적대로 이후 1921년 성결교단으로 전환되었을 때에도 교단의 신학적 정체인 사중복음을 중심으로 교리적 정체성이 분명하였다. 해방 이후 일부 신학자들이 성결교단의 신학적 정체성을 웨슬리신학에서 찾고 연구하고자 했지만, 웨슬리신학보다 직접적인 영향은 만국성결교회와 더불어 근원적으로 동양선교회의 카우만, 킬보른, 나카다 쥬지의 신학사상이라 할 수 있다. 동양선교회의 설립 역사도 분명히 나타내고 있는 것처럼 성결교단은 사중복음을 중심으로 동양선교회의 교리적 정체성을 전수받은 교단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사중복음을 중심으로 한국성결교회의 신학적 체계를 견고히 해야 한다. 양 교단이 분립되면서 가장 큰 문제는 신학적 강조점이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는 사중복음을 전도 표제로 받아들이고 교단의 신학적 정체성을 웨슬리신학을 기반으로 두었다. 그러나 예수교대한성결교회는 동양선교회의 신학적 유산을 계승하여 사중복음의 교리적 신학 체계를 견고히 하고 있다. 19세기 웨슬리안 성결운동에서 기인한 성결교회의 신학적 정체성을 웨슬리라는 편중된 입장에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성결교단의 신학적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사중복음 틀 안에서 새로운 신학화 작업을 모색하여 성결교단의 신학적 토대를 세워야 한다.
셋째, 한국성결교회는 신학적 유산인 사중복음 틀 안에서 일치와 연합을 이루어 나아가야 한다.
무엇보다 사중복음의 신학적 체계 아래서 성결교단의 신학적 사상을 더 발전시켜야 한다. 설립 당시부터 주장되어 온 사중복음은 성서적이며, 전통적인 복음주의의 맥을 잇는 것이다. 따라서 사중복음의 신학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웨슬리신학의 편향성을 넘어서서 신학적 유산인 사중복음 안에서 웨슬리신학, 웨슬리신학에서의 사중복음을 통전적으로 이해하는 신학적 작업을 통해 성결교단의 일치와 연합에 힘써 나아갈 때, 복음 중심, 선교 중심의 교단으로서 세계를 선도해 나가는 교단으로 발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성결교회는 사중복음 안에서 일치와 연합을 이루어 성결교단의 다음 세대와 다음 100년을 준비하여, 사중복음의 정신을 널리 전파하며 자생적 개척 교단으로서의 전통과 신학적 유산을 발전시켜 나아가야 하는 데에 그 어느 때보다 힘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