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말까지 한·중·일 동아시아 삼국은 명·청국의 해금정책의 영향으로 대외교역활동을 금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 서구제국들이 동남아시아 지역에 거점을 마련하고 동아시아 대륙으로 진출을 시도하면서 동아시아는 새로운 변화의 양상을 띠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과 달리, 조선은 19세기에 이르러서도 중국의 해금정책의 영향과 진산(珍山)사건과 황사영 백서(黃嗣永 帛書)사건 등으로 서양에 대한 반감이 확산되어, 민간의 대외교역이 활발할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표류는 바깥 세계를 경험할 수 없었던 일반 조선인들에게 타문화를 접촉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고, 표류민들이 현지에서 겪은 체험담은 동시대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표해시말』의 표류 주인공인 문순득은 어떠한 인물일까? 그는 우이도에 입도한 남평 문씨인 문일장의 4대손으로, 문덕겸의 네째 아들이다. 홍어장수 문순득(1777-1847)은 25살이었던 1801년 12월에 우이도를 떠나 다음 해 정월 태사도에서 홍어를 사가지고 돌아오다가 표류를 시작하게 된다. 정약전은 문순득이 유구(오키나와)에 도착했다가, 여송(필리핀), 마카오, 중국을 거쳐 우이도 집에 돌아오기까지 3년 2개월 동안 표류한 내용을 토대로 『표해시말』을 썼다.
대부분의 표류기가 시간의 경과에 따라 일기체로 서술되어 있는 반면에, 『표해시말』은 3부로 나누어 기록되어 있다. 제1부는 문순득이 작은 아버지 문호겸 등 다른 5명과 함께 표류한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일기체로 서술해 소개하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제1부는 1801년 12월부터 1805년 1월 초까지, 신안군에 있는 우이도에서 시작하여 오키나와(당시 유구), 필리핀 북부(마닐라, 당시 여송), 마카오(당시 포르투갈령), 중국을 거쳐, 압록강을 건넌 후, 한양을 지나 고향인 우이도에 다시 돌아올 때까지의 내용이다. 제2부에서 정약전은 문순득이 유구와 여송에서 견문한 내용을 풍속, 궁실, 의복, 해박, 토산의 5개 항목으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다. 그 가운데 당시 미지의 세계였던 여송에 관한 견문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 중에서 한국인 최초의 견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제3부는 조선어 112개의 단어를 유구어, 여송어와 비교하여 기록한 자료이다. 이 자료는 신숙주가 성종의 명을 받아 쓴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의 「語音飜譯」에 들어있는 유구어 자료와 함께, 옛 유구어와 여송의 말을 수록하고 있어 옛 한글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소중한 자료이다. 문순득이 한글 발음대로 표기하여 남긴 이 언어기록은, 사라져 버린 당시의 유구 방언을 이해하는데 매우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여송어의 경우, 스페인어와 필리핀 방언이 섞여 혼재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여송 지역이 스페인의 영향을 받는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최근에 한국과 동남아시아는 다양한 분야에서 상호교류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19세기 초반에 한국과 동남아시아는 가까운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조선에게 동남아시아는 미지의 세계였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문순득은 유구(오키나와)에서는 8개월 17일, 여송(필리핀)에서는 8개월 28일, 중국에서는 13개월 26일 그 중 북경에서는 5개월 16일을 체류했다. 문순득은 자신이 표류한 지역들을 『표해시말』에서 상세히 소개하고, 그 표류지에 대한 자신의 인식을 곳곳에서 드러내, 조선인들의 동남아시아에 대한 인식을 확장시켰다. 비록 정약전이 기술해서, 문순득이 직접 표현을 하지 못했지만, 독자들은 『표해시말』의 행간에 담긴 그의 인식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문순득의 표류 경험은 타문화에 관심과 동경을 하고 있던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세계 인식을 확장할 수 있게 한 간접적인 기회였다. 그의 표류는 여송 마카오와 같이 인적교류가 없던 동남아시아 지역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제주도에 표착했던 여송국의 표류민을 송환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문순득의 표류는 정약전의 『표해시말』과, 이강회가 쓴 『운곡선설』, 그리고 정약용이 쓴 『경세유표(經世遺表)』로 이어져, 조선 실학자들의 동남아시아 인식을 확대하는데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약 220년전 문순득이 살았던 시대를 오늘날 21세기의 영어로 번역하여 재현하는 것은 어려움이 수반되는 일이다. 『표해시말』에는 경우에 따라 상세한 설명이 있기도 하지만, 기술한 내용이 너무나 간단해서 이해하고 영어로 번역하기에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필자는 이미지 사진들과, 선행 연구자들의 연구 덕택으로 번역상의 제문제를 해결하고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 영어 번역을 통해 『표해시말』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늘어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