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6-1584)가 제시한 '공론(公論)' 개념의 의미와 공론정치(公論政治)의 작동과정을 밝히고, 율곡 '공론' 개념의 현대적 함의를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공론'은 국인(國人)이 '공심(公心)'으로써 현안(懸案)에 대응하여 문제의 해결을 갖춘 의견을 말하며, 공론 중에서 득중(得中)한 의견이 '정론(正論)'으로 채택되고, 정론을 '국시(國是)'로 삼아 정책이 시행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공론정치이다.
그동안 '공론'은 역사학계, 정치학계, 철학계, 사회학계 등 다양한 학계에서 각자 다른 학술적 의도로 연구되었다. 본고는 공론 연구의 핵심이 되는 율곡의 '공론' 개념을 분석함으로써 각기 흩어져 있는 공론 연구의 성과를 종합한다. 그리고 기존 연구에서 살피지 못한 율곡 공론 개념의 시대적 맥락과 이론적 근거들을 밝혀 공론의 의의와 전모를 조망한다. 또, 본고는 현대 다양한 사회문제에 시도되고 있는 '공론화'에 새로운 이론적 토대를 제공해준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바탕으로 조선에서 빈번하게 사용되었던 '공론'의 용례를 살펴 율곡 당대까지 공론 개념의 역사성을 추적한다. 『성학집요(聖學輯要)』를 주요 텍스트로 삼아 율곡의 저술 의도와 논의의 흐름을 고려하여 『성학집요』에 인용된 형태를 재인용한다. 역사상 드러나 있는 '공론'과 차별하여 율곡이 사용한 '공론' 개념의 이론적 배경을 탐색한다. 『조선왕조실록』과 율곡의 『경연일기(經筵日記)』를 통해 '공론' 개념을 중심으로 율곡의 사상과 행적(行迹)을 재저술한다. 율곡 사상에서 공론을 수기(修己)와 치인(治人)의 중심에 두면, 수기는 공론의 담지자를 양성하는 일이 되고, 치인은 공론을 선별하고 시행하는 일이 된다.
율곡의 '공론' 개념은 유가(儒家)의 심성론(心性論)을 경유하고 당대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야 파악할 수 있다. 율곡은 '공론'을 '人心之所同然者'라고 정의했는데, 이것은 율곡이 '공론'을 심성론(心性論)과 명시적으로 연결하여 '공론' 개념을 유가 심성론에 근거시켰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본고는 '공론이 가능한 심성론적 근거'와 공론 형성과 선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율곡의 '성의(誠意)'에 대해 검토한다. 또, '공론정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어떤 정치적 조건이 필요한가'에 대하여 분석한다. 율곡의 행적과 다양한 저술(著述)을 살피면서 정치 구도의 변화와 상황에 따른 율곡의 태도와 대응을 알아본다. 이 과정에서 율곡 '공론' 개념의 의미가 입체적으로 드러난다.
본고가 도출한 율곡 '공론' 개념의 현대적 함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율곡의 '공론' 개념이 '공심'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둘째, 이러한 공심을 갖춘 위정 집단의 '보합(保合)'이다. 셋째, '회의주의(懷疑主義)'를 경계함으로써 범인(凡人)의 공치(共治)가 성인의 치세에 근접할 수 있다는 관점이다. 넷째, '인(人)-언(言)'을 분리함으로써 필부(匹夫)의 의견이라도 버려지지 않게 하는 한편, '의견에 대한 비판'이 '의견을 낸 자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한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복수(複數)의 선(善)'을 승인하여 정론(正論)을 선별하는 과정이 '선(善)'과 '악(惡)'의 대립이 아니라 '선(善)'과 '선(善)'의 경합(競合)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