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의 연구 목적은 북일 국교정상화 교섭을 협상전략과 정치비용 중심으로 분석하고 전망하는 데 있다. 2022년 12월 현재, 북한은 각종 미사일 발사와 더불어 핵실험 위협, 전술핵 개발 및 실전 배치 등을 통해 동북아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 특히 일본 열도 상공을 통과하는 중거리 탄도미사일 도발은 일본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와 같이 점증하는 북한의 안보 위협은 일본의 방위비 증대, 군사력 강화, 그리고 평화헌법 개정의 구실로 작용하고 있다. 북한의 위협은 또한 역설적으로 상당 기간 중단되어 온 북일 국교정상화 교섭 재개의 필요성도 동시에 증대시키고 있다.
북한과 일본은 지리적으로 가까우면서도 국교를 맺지 못한 지구상의 몇 안 되는 인접 미수교국이다. 양국은 냉전체제의 붕괴와 함께 관계정상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1991년 초부터 2년에 걸쳐 교섭을 벌였으나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국교를 정상화하는데 실패했다. 2002년에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총리가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갖고 역사적인 '평양선언'을 채택했으나 이후 재개된 수교협상은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 이후 양국은 2004년 제2차 북일 정상회담과 후속 국교정상화 교섭, 그리고 각종 공식 또는 비공식 접촉을 거쳤으며 2014년 '스톡홀름 합의'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 합의 역시 2년 후 사실상 파기된 채 지금까지 양국은 비정상적인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따라서 본 연구는 첫째, 북한과 일본이 이와 같이 수십 차례에 걸친 협상에도 불구하고 전후 80년 가까이 미수교국으로 남은 원인은 무엇인가? 둘째, 양국은 국교정상화를 위한 교섭에서 어떤 협상전략을 구사했는가? 셋째, 협상 과정과 그 전후에 어떤 정치비용을 치렀는가? 넷째, 국교정상화 교섭 타결의 전제 조건은 무엇인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향후 북일 수교협상은 어떻게 전개될 것이며, 타결된다면 그것이 동북아 및 한반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 같은 질문에 답하기 위해 본 논문에서는 전후 적대관계에서 상호 접근 시도, 갈등의 역사를 거듭해온 냉전기 북일관계와 국내 및 국제정세의 상관관계를 살펴보았다. 또한 냉전체제가 붕괴된 직후 양국의 수교 협상이 본격화한 1989년부터 1993년까지 5년간 북한 노동신문에 실린 일본 관련 기사 및 논평을 주제별로 나누고 주제별 기사의 빈도를 측정했다. 이 분석 시기는 정부 간 공식 수교협상이 이뤄지게 된 1990년 '3당 공동선언'이 있기 1년 전부터 1차∼8차 교섭에 걸친 공식 협상 과정, 그리고 8차 협상 결렬 이듬해인 1993년까지이다. 분석 결과 노동신문은 이 기간 일본의 과거 침략에 대한 비난 및 과거청산 필요성, 위안부 문제에 대한 비난, 일본의 핵무장 및 군사력 강화에 대한 비난을 쏟아냈으며 특히 수교협상 후반 이후 및 결렬 이후에 일본 비난 기사가 급격히 증가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분석을 통해 북한의 수교협상전략으로 1) 일본의 과거 침략행위, 특히 위안부 문제를 집중 부각시켜 국제 인권 문제화함으로써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를 희석시키고 2) 일본의 플루토늄 대량 저장을 핵무장 의도로 몰아세우고, 군사력 강화 문제를 부각시킴으로써 북한 스스로의 핵 개발 및 무력 증강의 명분을 쌓고 3) 과거 일본의 식민지지배 및 침략행위를 비난하고 과거청산의 필요성을 강조함으로써 협상력을 높여 향후 최대한의 경제지원을 이끌어내려는 의도가 있었음을 파악했다.
반면 일본은 1) 한국, 미국 배려 2) 1965년 한일조약과의 정합성 3) 북한 핵문제 우선 해결 4) 일본인 납치 의혹 '이은혜' 조사 촉구라는 네 가지 원칙으로 협상에 대응했다. 일본은 우선 3당 공동선언에 대한 미국과 한국의 우려 제기 및 견제에 영향을 받아 "일본 정부는 북일 정당 차원의 공동선언에 구속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또한 1965년 체결한 한일조약과의 정합성을 강조하며 북한의 전쟁배상, 또는 식민 지배 피해 보상 요구에 청구권 상호 포기 및 경제협력 방식의 과거사 청산 방식으로 대응했다. 특히 남북관계 개선, IAEA 핵사찰 수용, 핵 보장 조치 협정 체결 및 이행 등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이는 한미 양국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으로, 북한의 반발을 초래했다. 결국 북한은 이 모든 요구조건을 순차적으로 받아들였음에도 일본은 또다시 남북 동시 사찰이라는 추가 요구로 북한을 자극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일본인 납치 의혹인 '이은혜 문제'를 집요하게 제기했다. 북한은 이에 강력히 반발함으로써 회담은 결렬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또 21세기 들어 개최되었던 2002년 제1차 및 2004년 제 2차 북일 정상회담과 이를 전후로 한 북일 국교정상화 교섭의 쟁점과 결과, 수교 실패 원인 등을 협상전략 및 국내적 정치비용 측면에서 분석했다. 일본은 납치문제 해결을 국교정상화의 전제 조건으로 내세우며 북한을 지속적으로 압박했다. 이는 자국의 윈셋 크기를 축소해 협상력을 높이려는 '발목 잡히기' 전술이었다. 고이즈미 총리는 실제로 이 같은 윈셋 축소 전략으로 자신의 국내적 정치비용 부담을 최소화하는 데 성공했다. 지지율을 높이고 선거에서 승리함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할 수 있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역시 납치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며 자신의 정치적 입지 강화, 지지 세력 결집 수단으로 활용했다.
반면 북한은 김정일 위원장의 전격적인 납치 시인, 사과, 재발 방지 약속으로 납치문제를 해결하고 국교정상화를 통한 경제지원을 모색했으나 실패했다. 납치문제의 시인과 '피랍자 8명 사망' 발표가 일본 내에 충격을 주었고 사망 경위를 둘러싼 의혹과 '가짜 유골' 파문까지 이어지며 북한에 대한 반발 여론이 비등하게 되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북한은 피랍 생존자 5명을 일본에 일시 귀국시켰고 일본의 끈질긴 요구에 이들의 영주귀국을 승인했을 뿐 아니라 북한에 남은 피랍생존자의 자식과 남편 등 가족까지 모두 일본으로 보냈다. 일본 내 반북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일종의 '교섭 상대국 윈셋 확대 전략'이었다. 그럼에도 일본 내 반북 여론은 가라앉지 않고 북일관계는 악화되었다.
본 연구는 북한과 일본의 국교정상화 교섭 과정에서 나타난 주요 쟁점을 살펴보고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양국이 구사한 전략과 효과를 분석하는 데 주력했다. 분석 결과 양국이 국교정상화라는 최종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가장 큰 요인으로는 최대 쟁점인 납치문제 미해결을 꼽을 수 있으며 이는 일본 국내 여론의 향배를 제대로 전망하지 못한 김정일의 전략적 판단의 실수에 기인한 것이었다. 협상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줄기차게 납치문제 해결을 전제 조건으로 내세우는 자국 윈셋 축소 전략을 구사했으며 결과적으로 북한의 양보를 이끌어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북한은 독재국가의 특성상 자국 윈셋 축소 전략보다는 상대국 윈셋을 확대하기 위한 전략, 즉 '메아리' 전술 구사에 주력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북한과 일본이 지구상에서 매우 드문 인접 미수교국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일본의 마지막 전후처리 및 북일 양국의 과거청산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향후 동북아 정세 변화에 따라 북일 국교정상화 교섭은 재개될 수밖에 없다. 재개될 수교협상에서는 일본인 납치문제와 북한 핵 미사일 문제가 주요 쟁점으로 떠오를 것은 명약관화하다. 다만 북한의 핵무기 및 미사일이 갈수록 고도화되어가고 이것이 일본의 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어가고 있는 현시점에서 일본의 대일 협상전략은 방향 수정이 요구된다. 기존의 납치문제 우선 해결 혹은 납치 핵 미사일 포괄적 해결에서 핵 미사일 우선 해결 쪽으로 무게중심이 옮겨져야 할 것이다. 즉, 북한의 안보 위협을 '국가안보에 중대한' 것이라고 새롭게 정의하는 '사안의 재정의'와 협상 결과에 따른 이득을 재분배하는 '이면 보상'을 통해 납치 피해자 가족들을 보상하는 등 '고삐 늦추기'를 시행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