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연구자가 고향을 주제로 작업한 포토콜라주 〈호경창촌〉 연작에 대한 작품논문이다. 연구자는 본 연구자만의 새로운 시각과 표현방식으로 고향에서의 유년기와 청소년기의 기억과 삶에 관한 이야기를 찾아내고 발굴하고자 하였다.
본 연구자의 고향은 북한강 유역 가평군으로서 고향의 많은 장소가 옛날과는 판이하게 변화된 모습을 보이지만, 연구자는 오랜 시간 그곳이 간직하고 있고 그곳에 묻혀 잊혀져 버린 기억을 되살려내고자 하였다. 〈호경창촌〉 연작에는 그곳의 오랜 역사를 품고 말없이 존재하고 있는 산과 물, 그리고 마을과 주민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장소는 기억의 기반을 확고히 하면서 동시에 기억을 명확하게 증명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Assman, 2011).' 본 연구자는 작품을 제작하면서 '자신을 확인받을 수 있는 근원적 장소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였고 '그곳은 바로 '고향' 이다' 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러므로 고향의 상실은 인간을 끊임없이 부유하게 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는 근원적인 공간이 없다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작품의 기본 개념이 되는 기억과 내러티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인간은 뇌 속에 좋은 기억으로 각인된 대상을 오래도록 기억하고자 하는 욕망을 품지만, 그 반대의 기억은 지우고도 싶어 한다. 아스만에 따르면 기억은 기능기억과 저장기억으로 구분된다. 기능기억은 활성적 기억으로서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하는 다리를 놓는다. 또한, 이것은 기억하고 저것은 잊어버리면서 사건을 선결 처리하며 정체성의 특성과 행동의 규범이 생기게 된다. 저장기억은 비활성적 기억으로서 현재와의 활성적 관계를 상실한 것들이다. 이 둘은 서로 상보적인 관계에 있다.
본 연구자는 과거의 시간들이 현재의 나 자신을 만들었다는 아스만의 이론에 따라 자아와 정체성의 본질을 작품 속의 내러티브로 보여주고자 하였다. 내러티브를 지닌 이야기만이 관객에게 유의미한 기록이 되기 때문이다. 고향이라는 특정장소에서 과거와 현재를 동시적으로 아우르는 시간성과 불확실한 기억, 그리고 향수에서 찾을 수 있는 삶의 진실한 가치가 본 연구작에서 내러티브적 자아를 구성하는 구성요소이다.
고향의 현재 모습과 과거의 기억이 담긴 사진들을 마치 퍼즐 맞추듯 조합하여, 잊고 지냈던 꿈같은 기억의 공간을 재현해 보고자 하였으며 소환된 기억의 편린들 속에서 사라져버린 소중한 젊음과 정체성과 자아를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였다.
연구자는 우리 마음속의 영원한 고향으로부터 사실보다 더 사실적인 내러티브를 구축할 수 있는 방식으로 포토콜라주가 가장 이상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하였다. 콜라주 방식은 시대에 따라 예술가들에 따라 조금씩 그 사용 목적과 의의가 다르게 전개되어 왔으나 그 기저에는 우리 주변을 둘러싼 삶의 방식과 문화의 양상이 달라지고 있는 것에 부응하여 표현의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는 콜라주예술가들의 통찰이 있었다. 콜라주 예술가들은 기존의 낡고 경직된 질서에 저항하면서 실험과 도전을 추구하는 정신을 콜라주 방식으로 대변하였다.
콜라주의 재료는 연구자의 오래된 가족 앨범에서 나온 가족들의 사진, 지역 도서관에서 찾은 지역의 역사 기록물들, 그리고 연구자가 새로이 촬영한 고향사진들이다. 연구자는 이 다양한 사진들을 컴퓨터 포토샵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혼합병치하고 재맥락화하여 연구자가 기억하는 고향사람들과 향수에 대한 시각적 내러티브를 만들었다.
선행작가로는 아날로그 방식의 암실작업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주제로 한 비현실적 상상의 세계를 만든 제리 율스만(Jerry N. Uelsmann)과 19세기 한 개인들의 매우 사적인 초상사진을 이용하여 삶의 경험과 존재의 인식에 공적인 개념을 개입시킨 마르티나 로페즈(Martina Lopez)의 디지털콜라주를 살펴보았다. 또한 국내작가 원성원의 작품에서는 현실과 기록이라는 사진의 속성에서 벗어나 작가의 상상력과 표현력으로 가상공간을 구축하고 작가의 개인적 기억과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공의 기억과 문제로 전이시키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디지털 이미지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제는 한 장의 사진에 진실의 가치를 부여할 수 없게 되었다. 디지털 포토콜라주는 예술가의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현실로 가능하게 만들어 준다. 〈호경창촌〉 연작에서 큰아버지 회갑연, MBC강변 가요제, 자라섬 국제 재즈 페스티벌 등은 하나의 공동 기억으로 활성적 기억으로 작용한다.
〈호경창촌〉 연작은 연구자의 기억내용과 내러티브가 응축된 오랜 세월의 기록으로 하나의 소설에 비유할 수 있다. 이는 개인의 기억으로부터 출발하여 가족과 지역사회 구성원, 역사, 문화로 확장되며 단순한 기억의 나열이 아닌 치밀하게 계획되고 직조된 하나의 세계를 지향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