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가야지역에서 확인되는 삼가식 다곽분의 구조, 분포, 변천양상에 관한 연구이다. 연구대상 삼가식 다곽분의 구조 및 축조원리는 누세대적인 순차 축조가 이뤄진 다곽분으로 선축된 봉분을 굴착 행위를 통해 추가로 매장주체부를 축조하고 동시에 봉토를 덧붙여(重疊) 묘역이 확장되는 고분으로 봉분의 규모와 형태가 변형되는 '봉토중첩확장형 구조'의 다곽분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삼가식 다곽분은 다곽을 배치하는 방식, 선축된 묘역에 후축 묘역을 덧붙여 확장하는 축조방식, 봉분 및 매장주체부의 규모, 부장품 구성 등을 통해 여러 기의 매장주체부에 매장된 피장자 구성원은 혈연적으로 종속된 관계를 표현하는 중·하위층의 무덤으로 판단하였다.
연구내용은 기존 연구에서 밝혀졌던 삼가식 다곽분의 개념과 현황을 바탕으로 삼가고분군 및 주변 지역의 중·소규모 고분군에 분포하고 있는 다곽분에 대한 구조 및 축조방식의 속성을 검토한 뒤 이를 형식 설정하였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단계별로 삼가식 다곽분의 변천과정을 고찰하였고 매장된 구성원의 관계 및 위계를 분석하였다. 마지막으로 중심과 주변지역에 삼가식 다곽분의 확산과 수용과정을 연구하고 이러한 분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살펴보았다.
연구대상은 8개소의 유적에서 62기로 삼가식 다곽분의 구조가 확인되는 합천 남부지역과 의령, 산청, 진주지역 등 남강 유역권에 포함하고 있는 지역으로 공간적 범위를 설정하였다. 분석 기준은 봉분 및 주구의 중첩된 확장이 확인되는 다곽분과 봉토가 유실되었지만, 모두 주구를 통해 묘역을 구분하였고 주구 아래에 복수 매장주체부를 축조하였기 때문에 크게 주구를 기준으로 삼가식 다곽분의 구조를 분석하였다. 편년은 매장주체부의 형태와 부장품 양상을 기준으로 분석하였다. 본 연구를 통해 분석한 삼가식 다곽분의 변천양상과 분포 의미 등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삼가식 다곽분을 분석한 결과 삼가식 다곽분의 변천 과정은 I~III期로 분기할 수 있으며 각 시기의 변화상과 함께 삼가식 다곽분의 도입·성행·쇠퇴 등 시간에 따른 변천양상을 살펴보았다. I期는 도입단계로 5세기 중·후반 석곽묘 묘제의 채용과 고총 고분의 출현으로 여러 기의 석곽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다곽식 석곽묘 묘제가 성립되었고 삼가지역은 이러한 다곽식 묘제에서 독자성이 발휘된 다곽식 묘제형식이 도입되었다. II期는 6세기 전반~중반 삼가식 다곽분의 축조가 성행하는 시기이자 동시에 축조방식과 매장 관념이 남강 유역권에 분포하는 주변 중·소규모 고분군에 확산하는 단계이다. III期는 쇠퇴하는 단계로 가야멸망(562)부터 7세기 전반에 해당한다. 신라 계통의 석실묘로 매장주체부의 형태가 변화되고 신라 후기양식의 유물 점유량이 증가하는 등 신라 지방체제에 편입되는 단계이다. 하지만 삼가지역은 가야멸망 이후에도 재지계 묘제형식의 삼가식 다곽분 축조방식과 매장 관념을 존속시켰다. 이는 약 150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삼가식 다곽분의 매장 관념이 전통성을 고수하고 당시 삼가지역 집단의 내세 관념이 상당히 보수적이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삼가식 다곽분은 모두 낙동강의 본류와 지류인 남강수계와 합류하는 유역권에 위치한 고분군에 분포하고 있으며 남강 수계권을 포함한 하나의 분포권을 형성하였다. 삼가지역 집단은 남강수계를 통해 다종다양한 문물과 함께 삼가식 다곽분의 축조방식 및 매장 관념을 확산하였고 주변지역은 삼가지역의 주도(主導)로 정치적 측면의 종속적인 관계가 아닌 경제·문화적 측면의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자율적인 상호작용이 이뤄졌으며 중층적(重層的) 네트워크(關係網)를 형성하였다. 그리고 이들 지역 집단이 삼가식 다곽분을 수용한 배경은 계층에 따른 묘제로 인한 제한적인 묘역 안에서 시·공간을 절약시켜 직계존비속의 혈연적 관계를 맺은 구성원을 효과적으로 매장할 수 있는 기능과 다인장(多人葬)·다차장(多次葬)을 효율적으로 행할 수 있는 무덤의 기능 때문에 수용한 것으로 파악된다.
한편 삼가식 다곽분이 분포한 주변지역 고분군에서는 남강수계를 통해 삼가식 다곽분의 구조 및 축조방식이 확산하는 과정 속에서 일부 변동현상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중심지역 내 삼가식 다곽분의 피장자와 주변지역의 피장자간에 위계 차이가 크게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주체성을 가지고 주변지역 집단의 구성원들이 의도적으로 구조를 변동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이러한 고고학적 현상을 단순히 동일한 계층에서 나타나는 요인 때문에 발생된 것으로 규정하기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어 당시 가야지역의 사회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가야는 축적된 선행 연구 자료를 통해 보았을 때 가야지역은 소분지를 배경으로 고립된 환경 속에서 개별 지역 지배집단이 고분군과 왕성을 형성하는 것과 같이 정치체를 형성하였다. 이로 인해 고립되고 분할된 상황에서 사회 구성원들은 가야지역 집단의 기층을 극복과 발전시키고자 네트워크 형성에 따라 자율적인 상호작용을 이루고자 하였다. 이러한 자율성이 나타나는 사회 분위기 안에서 주변지역집단은 자체적으로 의도적인 선택적 수용과 거부가 가능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상 남강 유역권을 중심으로 분포하는 삼가식 다곽분의 분포체계는 소가야지역 내 중심과 주변지역 지배집단 간의 다원적인 관계를 보여주며 자율적인 상호작용에 따른 소가야의 중층적 네트워크 양상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고고학적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당시 가야 사회 집단들이 자율성을 추구하고자 했던 시대상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