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의 목적은 서거정이 애다(愛茶)의식과 문예인식의 형성 배경을 고찰하고, 유가·도가·불가의 사상이 미학(美學)적으로 다시(茶詩)에 나타나 있음을 밝히는 것에 있다. 서거정은 조선 초 대표적 관각문인으로 22년간 문형(文衡)을 맡아 『동인시화(東人詩話)』 등 다양한 저술 및 편찬을 하였으며, 『사가집(四佳集)』은 그의 생전에 간행된 문집으로 여기에는 우리나라의 문인 중 가장 많은 수의 다시가 포함되어 있다.
서거정은 권근(權近), 유방선(柳方善) 등 그의 가계 및 스승의 영향과 출사 이전부터 산사(山寺)에 있는 스님과의 교유를 통해 애다의식이 형성되었고 『사가시집(四佳詩集)』에 120여수의 다시를 남겼다. 조선 초는 유가사상을 개국 이념으로 삼아 관인문학이 융성하였고 시문의 목적에 있어 보국(輔國), 세교(世敎) 등과 함께 수양적 측면의 문이재도(文以載道)가 중요하게 부각되었으며, 이는 서거정의 문예인식으로 다시에 나타나 있다. 조선 초 문인은 송대 문인사대부로부터 문학적 측면 외에 은일(隱逸)적 처세관에도 영향을 받아 관직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여가 시기에는 선경의 공간을 만들어 은일을 추구하였으며, 이러한 대은적 은일지향(隱逸指向)은 서거정의 다시에 그대로 담겨져 있다. 송대의 사회심리적 불균형의 해소를 위해 문인사대부에게 적극적으로 수용된 선종(禪宗)은 내향적 관조와 자기성찰이라는 의식이 문예에 영향을 주었고, 서거정의 다시에는 선(禪)을 추구하고자 하는 문예인식으로 투영되고 있다.
서거정 문예인식의 사상적 배경이 되는 유가, 도가, 불가 또한 미학으로써 그의 다시에 표출되고 있다. 유가사상(儒家思想)은 성선(性善)의 관점에서 본심을 간직하고 본성을 길러 인격을 완성하는 수양 과정을 중시한다. 서거정 다시에는 인격 수양의 과정에서 느끼는 미의식이 담겨 있다. 이것은 수신(修身)과 반성(反省)을 통해 인격미를 갖추어 가는 정성미(精誠美), 관료로서 백성을 사랑하는 인혜미(仁惠美), 인격미의 최고 경지인 유어예(遊於藝)의 적정미(適情美), 선한 본성을 확충하고 의를 모아서 기른 정직의 용기인 호연지기의 양강미(陽剛美)로 표현되어 있다. 도가사상(道家思想)은 작위적인 것을 배제하는 무위(無爲)의 사유와 도는 그 본성인 자연(自然)을 따른다는 도법자연(道法自然)이 그 핵심이며 미학적 사유의 근간이다. 도의 체득을 통해 만물과 나와의 경계를 잊는 소요유의 자유미(自由美), 만물제동(萬物齊同)의 사유로부터 시비(是非)를 조화시켜 자연의 이치에 따른다는 천균미(天鈞美), 공명·신퇴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은일적 자유로움을 취하고자 하는 자족미(自足美), 심재(心齋)와 좌망(坐忘)을 통해 마음을 비워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미적 체험인 허백(虛白)을 통한 청허미(淸虛美)로 표현되어 있다.
대승불교(大乘佛敎)는 공(空)과 불이(不二) 사상이 핵심인데, 특히 선종에서는 돈오(頓悟)를 중시한다. 대승불교의 유마경(維摩經)은 공의 평등성에 기반한 불이를 제시하고 있는데, 불이(不二)적 관점에서 만물의 조화와 원융의 세계를 이루고 집착을 초월하는 대자유의 경지인 원융무애(圓融無礙)의 불이미(不二美), 선종이 중시하는 직각(直覺)의 체험과 직접적 관조(觀照)를 통해 돈오의 비논리적인 깨달음을 미적 인식으로 전환한 묘오미(妙悟美)로 표현되어 있다.
본 연구는 사가 서거정의 조선 개국이라는 시대적 배경, 당송 문인의 문예와 처세관의 수용이라는 문화적 배경, 오랜 불가와의 교유라는 개인적 배경에서 형성된 유(儒)·불(佛)·도(道) 사상이 다시에 투영되어 문예인식과 미학으로 표출되어 있음을 밝혔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