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원교 이광사가 쓴 다양한 편액을 서예미학적 관점에서 접근하여 원교 편액이 갖는 독창적인 예술성을 논한 것이다.
편액은 널빤지나 종이·비단에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 문 위에 거는 액자로서 흔히 현판으로 통칭되기도 한다. 현판에 사용하는 서체는 고려말부터 조선초에 이르기까지 중국 원나라에서 들어온 雪庵體가 유행하였다. 왜냐하면 편액에 사용된 서체는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는 필획이 뚜렷하고 謹正하고 근골이 돋보이는 강건한 글씨체라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부분의 공적인 건물에는 특히 설암체가 사용되었다. 하지만 원교의 편액 서체는 매우 달랐다.
원교의 주요 편액서로는 〈靜窩〉, 〈淸海館〉, 〈萬景樓〉, 〈說禪堂〉, 〈大雄寶殿〉, 〈靜觀〉, 〈解脫門〉, 〈千佛殿〉, 〈枕溪樓〉, 〈說禪堂〉, 〈智異山 泉隱寺〉 등이 있다. 원교 편액서의 특징은 당시 유행하던 설암체를 따르지 않고 자신의 독창적인 원교체를 운용했다는 데에 있다. 이런 점에서 원교 편액을 연구하는 것은 기존 조선조에서 유행한 편액 글씨 방식을 따르지 않았다는 점과 원교체가 실제 공간과 건물에 어떻게 적용되었는지를 잘 알 수 있게 하는 의의가 있다.
이런 점을 먼저 제2장에서는 편액의 의미와 조선조 제작 경향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런 규명을 통해 편액이란 무엇이고, 편액의 용도가 무엇인지를 알 수가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조선조 편액과 설암체 유행 경향은 어떠했는지를 통해 규명하고자 하였다. 이 같은 규명을 조선조에서 유행한 설암체가 어떤 건물에 사용되었고 어떤 미의식을 지닌 서체인지를 규명하기 위함이었다.
제3장에서는 원교 서예인식과 편액 제작 경향의 상관관계를 규명하였다. 원교의 서예인식을 규명하는 이유는 원교가 편액 서체를 선택한 것에는 원교의 서예인식이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점을 먼저 인위적 설암체 거부와 天機發露를 통해 규명하고자 하였다. 원교는 서예란 서예가의 주체성과 진정성을 토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면서 天璣를 드러낼 것을 강조하였다. 이 같은 사유는 원교가 편액 서체를 운용함에 있어서도 인위적 설암체를 거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특징을 보였다.
다음 원교 서예창작 정신의 핵심이면서 운필법의 핵심인 萬毫齊力의 推展을 살펴보되 특히 連綿性에 초점을 맞추어 규명하고자 하였다. 연면성을 통한 이 같은 운필법은 유가미학에 근거한 절제성을 기본으로 하는 운필법과 다른 것에 속하는데, 연면성은 원교의 만호제력의 추전을 통한 붓놀림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아울러 이런 점은 活物로서의 서예인식과도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그것을 狂禪이란 사유와 연계하여 규명하였다. 원교의 서예창작 경향에는 陽明心學 가운데 泰州學派 즉 이른바 陽明左派의 사유가 담겨 있다. 이 같은 양명좌파 사유는 이후 禪宗과 결합해 이른바 광선이란 사유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이 원교가 쓴 사찰의 편액에 담긴 狂禪 경향을 살펴보았다.
제4장에서는 원교 편액의 미학적 書境을 규명하였다. 원교가 작성한 편액 서체는 건물의 용도와 위치에 따라 방정하면서도 운필이 절제된 이른바 方勁古拙한 扁額이 있다. 이 같은 方勁古拙한 편액은 양명심학보다는 주자학의 중화미학적 사유가 깃들어 있었다. 〈大雄寶殿〉이 그러한 예였다.
다음 원교의 편액 서체는 佶屈推展的 扁額과 字無常體的 扁額이란 두 가지 특징을 갖는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靜窩〉, 〈淸海館〉, 〈萬景樓〉, 〈說禪堂〉, 〈靜觀〉, 〈解脫門〉, 〈千佛殿〉, 〈枕溪樓〉, 〈說禪堂〉, 〈智異山 泉隱寺〉 등이 그 예였다.
佶屈推展은 원교가 주장하는 운필 및 형상에 관한 기본사유에 해당하는데, 편액 서체를 운용하는 데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울러 원교가 편액을 통해 표현하고자 한 서체는 작품에 따라 字無常體의 서예미학이 담겨 있는 경우가 있다. 자무상체 사유는 기본적으로 초서 운용에 적용되는 것인데, 원교의 편액에 쓰인 초서는 여타 조선조의 다양한 편액과 비교할 때 자무상체의 사유를 가장 잘 담고 있다는 특징을 규명하였다.
원교 이광사는 정치적 고난과 더불어 유배 생활을 하는 삶 중에 자신만의 독창적 서예정신과 진정성이 깃든 광적인 서예를 펼쳐 나갔다. 이런 점은 서예는 살아 움직이는 것을 귀하게 여기며, 살아 움직이면 정해진 모양이 없다는 사유로 나타났다. 특히 서예에서의 생명성을 강조하는 사유는 편액 서체에도 그대로 표현되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사찰 등의 편액에 쓰여 있는 원교체에는 그가 지향한 서예정신이 깃든 독창적이고 기운 생동한 것들이 많았다.
이상 본 바와 같이 사찰을 비롯한 다양한 공간과 건물에 걸린 편액 작품에 나타난 크고 웅장한 글씨체에는 서예의 주체성과 과감성, 진성성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 담겨 있다는 점에 원교 편액의 특징과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