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회화는 크게 조선 초기 중국화풍의 모방과 중기의 남종화의 등장 그리고 후기의 진경산수화와 풍속화, 말기의 남종문인화의 유행 등 네 시기로 변화되었다. 특히 양란 이후 정치는 물론 사회·경제·문화에서도 큰 변화를 가져온 격변기로써, 신분 질서의 붕괴로 기득권 중심의 문화 활동은 중인 및 부를 축적한 상인들까지 확장되었다. 문화 계층의 확장으로 조선 후기에는 다양한 문화의 발전이 이루어졌고, 한글소설과 사설시조 그리고 판소리나 탈춤 등 문학 및 공연 문화가 활성화되면서 사회현상을 풍자하거나 순수하고 솔직한 감정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등 보다 자유로운 표현과 소통이 형성되었다.
기득권 중심의 雅문화는 주제 및 대상의 확장을 통해 대중성을 확보한 俗문화의 경향이 두드러지면서 기존의 이분법적인 雅俗의 분리가 아닌 상호보완적인 형태로 문화 전반에 스며들었다. 이러한 조선 후기의 雅俗兼備的문화양상은 근대로 가는 변화의 시작으로 볼 수 있으며, 특히 회화 분야에서도 雅俗兼備的심미의식의 미학적 개념이 형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회화분야의 변화와 발전으로 기존의 중국 화풍의 관념적이고 웅장했던 산수화는 조선의 실경에 대한 아름다움과 고유성을 부각한 진경산수화로 발전하였고, 격식과 형식 그리고 정통을 중시했던 雅문화 중심에서 일상생활의 의미와 삶에 대한 통찰과 사유를 풍자적이고 해학적으로 표현한 風俗畵의 유행도 나타났다.
이러한 조선 후기 회화의 대표적인 선봉자로 단원 김홍도를 언급하는 것에 반론을 제기할 사람이 없을 정도로 김홍도는 이전의 화법과 차별되는 기법과 소재 및 주제의 다양화로 새로운 변화를 이끌었다. 그의 스승이자 예술적 동료인 姜世晃이 저술한 『檀園記』,『檀園記又一本』에서도 김홍도가 조선의 당대 최고의 화원으로 모든 그림에 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홍신유 역시 "단원은 나이 서른도 안되어 그림으로 세상에 이름이 났으니 무릇 하늘이 준 높은 재주 덕분이다."라고 하였다.
김홍도는 다양한 작품을 그렸지만, 風俗畵와 茶道畵그리고 屛風畵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으며, 그의 작품 속에 나타난 작가정신, 즉 雅俗兼備的심미의식은 이전의 화가나 화풍이 추구한 것과는 차별된다. 회화의 창작의식은 조선의 풍속에서 질료를 찾아 그렸으며, 완성된 그의 풍속화에 나타나는 심미의식은 雅俗兼備的균형과 조화를 통해 조선 후기의 시대성을 기반으로 하는 자신만의 독특한 창작성을 가지게 되었다. 생동감 넘치는 인물을 중심으로 사실성과 풍자를 통한 그의 풍속화는 정감과 해학을 전하는 근대적인 미의식에 가깝다.
실질적인 관점에서 조선의 변화된 모습을 현실 상황에 비추어 표현한 풍속화처럼, 다도화나 병풍화 역시 더 이상 中畵미학의 주류가 아닌 조선의 멋과 풍류로 담아냈다. 편협한 시선이 아닌 모든 것을 아우르는 미적 관점은 병풍화 배경에 그려진 자연과 인간의 삶이 공존하며, 자연과 떨어져 사는 고상한 인간이 아닌 자연안에서 소박한 삶을 즐기는 겸손하면서도 사랑을 베푸는 진정한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아와 속의 이원적인 구분과 단절이 아닌 상호보완적인 개념으로 해석한 김홍도는 雅俗兼備的심미의식을 통해 조선 후기의 미학을 새로이 재창조 하였다.
그동안 여러 부분에서 김홍도의 風俗畵나 山水畵를 통해 그의 미의식에 관하여 논하였지만 雅俗兼備的심미의식 부분이 간과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에 필자는 본 논문에서 김홍도의 작품을 통해 雅俗兼備的심미의식을 연구하고, 그의 독창적인 작가정신을 토대로 한국회화의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