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술의 역사는 정착생활을 하며 시작된 농경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 날씨로 인해 하늘에 대한 경천사상(敬天思想)이 생겼다. 한 해 농사가 잘 되도록 기원하고 잘된 농사에 감사하는 제천행사(祭天行事)가 중요했다. 신에게 바치는 술인 신주(神酒)가 만들어지고 행사가 끝나면 음식과 술을 나누며 서로에 대한 감사와 격려를 나누었다.
불교국가였던 고려 때 사원에서 빚어진 술이 관·민영주점을 통해 거래되면서 술을 사서 마셨지만 다양한 술 빚기 경험 가진 노비가 국가 재산으로 귀속되고 승려가 환속하면서 능숙한 술 빚는 기술이 세상으로 전해져 폭발력을 갖게 된다. 이런 환경의 조선에서는 사대부와 일반 백성들이 가정에서 술을 빚어 마시면서 가양주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후 농업이 본격적으로 발달하는 조선시대에 인구가 증가했다. 농지 개간과 농법 개발로 농업 생산량도 늘어나면서 술 만드는 재료는 고려때보다 여유로웠다. 벼농사로 전환되면서 술 빚기는 더욱 발전한다.
술의 역사에서 한 획은 그은 것은 증류주의 도입이었다. 몽골을 통해 증류가 도입되었다. 몽골군이 주둔하거나 전투가 있던 곳에 증류기술이 전파되었다고 알려졌다. 본 논문에서는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의 문헌을 통해 연구한 결과 몽골군이 주둔했거나 둔전을 설치했던 곳에서는 소주를 만드는 증류기술이 도입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특히 소주가 몽골에 의해 전해졌다는 전설이 있는 안동과 진도 또한 사실은 뒷받침할 자료는 미흡하였다.
소주가 전해졌다고 추론할 수 있는 지역은 일본원정을 출발했던 합포(창원), 고려의 수도였던 개경(개성), 그리고 몽골군이 직할지로 통치했던 화주(함경도, 영흥), 서경(평안도, 평양), 탐라(제주도)지역에서만 증류기술이 전해졌다고 판단되어진다.
소주는 오랜 전통을 가진 상압증류와 19세기에 발명된 연속식증류, 1970년대에 시작된 감압증류 등 세 가지 증류법으로 생산되고 있다. 오늘날 소비자들은 선택의 폭은 넓어졌다. 각각 증류라는 공통적인 방법을 통해 만들어졌지만 만들어지는 조건이 달라 같은 술을 증류하더라도 다른 느낌과 맛, 향을 보여주고 있어 애주가들의 흥미를 자극하고 있다. 이는 자칫 과음을 유도할 수 있는 요인으로 소주가 전래된 계기가 취하기 위해 용도보다 약으로 전해졌듯이 과도한 음주보다는 적절한 음주를 통해 건강을 지키는 습관을 가져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