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샤프(Alice H. Sharp, 1871-1972)는 1900년부터 1939년까지 한국에서 선교사로 활동하였던 초기 미국 북감리교 선교사이다. 앨리스 샤프 선교사는 1900년에 뉴욕 브루클린에 위치한 유니온 선교사 훈련원(Union Missionary Training Institute)을 졸업한 직후 한국으로 파송을 받아 공주지방을 중심으로 선교활동을 하였다.
앨리스 샤프의 약 39년간의 선교사 생활은 현재 일기와 같은 개인의 삶에 대해 자세히 기록한 자료가 발견되지 않았기에 그녀가 직접 작성한 보고서나 앨리스 샤프와 관련된 기록물을 통해 조명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본 논문은 앨리스 샤프가 작성한 보고서를 중심으로 앨리스 샤프의 선교사로서의 활동을 집중적으로 조명하였고, 선교 활동 속에서 드러나는 앨리스 샤프 선교사의 전반적인 삶의 모습과 선교를 행하며 보여준 정신을 중점적으로 다룸으로서 한국 교회의 개인의 신앙의 모범으로 앨리스 샤프를 제시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작성하였다.
앨리스 샤프는 해외 선교가 활발히 이루어지던 19세기에 종교적 관용이 허용되었던 캐나다 노바스코샤(Nova Scotia)주의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하나님의 일을 위해 온 삶을 헌신하고 싶다는 열망을 품고 성장하였다. 앨리스 샤프는 미감리회 해외여성선교회 소속의 독신여선교사로 1900년에 한국에 도착한 후 서울에서 상동교회 미드기념회당의 선교 및 매일학교와 남부지방회 선교를 시작하였다. 1903년 6월에 선교사인 로버트 샤프(Robert Arthur Sharp, 1872-1906)와 결혼한 이후에는 공주지방을 중심으로 선교활동을 하였으며 1906년에 발진티푸스로 로버트 샤프가 사망한 후에는 미감리회 해외여성선교회의 독신여선교사로 복귀하여 1908년부터 1939년에 은퇴하기까지 공주지방 여성선교를 위하여 헌신하였다.
앨리스 샤프 선교사는 공주지방에서 크게 사경회, 순회전도, 여학교, 유치원과 야학 등의 선교를 진행하며 복음 안에서 여성들을 계몽하고 주체성을 갖게 하였고 교육을 받은 여성들은 전도사, 교사, 전도부인, 의사, 간호사가 되었다. 또한 앨리스 샤프 선교사는 은퇴하기까지 한국을 제2의 고향이라 여기며 어려움 속에서도 강건함으로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주신 특권인 선교를 포기하지 않았고, 매순간 주시는 도움에 감사하는 개인의 신앙의 굳건함을 보여주었다.
앨리스 샤프 선교사는 십대 초반에 하나님의 일을 위해 삶의 전부를 바치겠다고 결심하였을 때부터 생을 마칠 때까지 하나님을 위해 열정적으로 헌신한 사람이다. 또한 수많은 순회전도와 사경회를 통하여 복음을 전하고 여성들을 계몽시키고 주체성을 갖게 한 부녀자들의 스승이었으며 여학교, 유치원, 야학을 설립하여 배움의 기회를 넓히고 하나님의 나라와 한국을 위한 인재를 길러낸 공주지방 여성교육의 개척자였다. 또한 다른 남성선교사들에게는 귀감을 주는 소중한 동료였으며 공주지방의 선교를 시작하는 여성선교사들에게는 든든한 선배이자 버팀목이었다.
그러므로 구원의 공동체인 교회의 회복을 위하여 개인의 신앙을 존속하고 신앙의 열정을 회복해야만 하는 이때에 앨리스 샤프 선교사는 우리가 닮아야 하는 개인의 신앙의 모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