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화된 사회 속에서 나와 다른 사람들과 살아가는 것이 인생(人生)이고, 그 안에서 어울림을 통해 나만의 경험을 쌓아가는 것이 삶이다. 다양한 이들이 있기에 다양한 생각이 있는 것이 보편적임에도 권력 안에 갇혀 그런 인생을 걸어가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를 있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올곧이 바라 볼 때는 느끼지 못한다. 내 주위에 어떤 인생이 있는지, 어떤 삶이 만들어지고 있는지 관심을 가질 수 없다. 차별과 혐의의 문제가 야기 되는 것도 관심이 없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내가 이 말과 행동을 함으로써 타자의 기분, 생각, 반응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기에 흘러 가는대로 살았던 우리들의 삶이 그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는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지만, 인생으로 바라 볼 때 선량한차별주의가 되었다. 이에 데리다는 각자의 차이를 이해함으로 차연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강조하며 변화를 이야기했다. 그동안 일반화되어 내가 어떤 차별과 혐오의 모습을 가지고 살았는지 관심이 없는 시대에 물음을 던졌고, 변화의 모습을 이야기했던 인물이다. 물론 데리다 이전에도 변화, 차연의 삶을 살아왔던 인물이 존재했고, 기독교의 역사 테두리 안에서 살펴본 것이다.
예수는 시대적 문화가 가지고 있었던 차별과 혐오의 문제를 사랑으로 재건한 인물이다. 질병에 걸린 자, 권력으로부터 붕괴된 공동체, 남성위주의 사회로부터온 차별과 혐오의 문제를 사랑의 모습으로 새로운 삶을 이야기했고, 사랑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예수는 나와 다른 모습을 띄고 있는 사람을 격리시키며, 자신들의 공동체에서 추방했던 이들과 함께 했고, 가족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왔던 지난날들을 권력의 힘에 붕괴 당했고, 이웃 사랑을 적극적으로 실천했던 모습에서 차별과 혐오의 시선으로 이웃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사랑의 관점을 다시 되새길 수 있도록 해주었다. 마지막으로 남성위주의 문화가 만연해 있는 사회 속에서 여자와 함께 일하며, 그들의 아픔을 들어주고, 그들의 권위를 세워주는 모습으로 시대가 가지고 있는 아픔의 모습을 사랑으로 재건했다. 예수는 조금 더 성숙한 기독교를 위해 사랑으로 힘썼다. 또 다른 인물로 웨슬리는 차별과 혐오의 문제에 도전으로 재건했던 인물이다. 권력이 뚜렷해 낮은 계급에 있는 이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회였다. 돈은 없었지만 나라에 내야하는 돈은 많았던 시대이다. 돈이 없는 사람은 교회에 와서 예배도 드리지 못하고, 인권은 찾아볼 수 없는 사회인 것이다. 이때 등장했던 사람이 웨슬리이다. 그는 돈을 빌려주고, 직업을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교회에 들어오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야외로 나갔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된다. 그리고 노예제를 폐지하는데 힘쓰며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권리를 지킬 수 있도록 사회에 도전한 인물이다.
이제 한국의 문화 속에서 해체를 통해 차별과 혐오의 움직임을 없애려고 한 인물을 살펴본다. 이들은 서구가 가지고 있었던 제국주의적 성향의 선교에 물음을 전지며 한국의 문화화 서구의 기독교를 조화시키려고 노력했던 인물이다. 윤성범은 한국의 내제 되어 있는 성의 문화, 효의 문화와 기독교를 조화시킨다. 한국의 문화를 만들어낸 토대가 되어, 우리의 삶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성을 통해 기독교를 이해하려고 했으며, 이를 기반으로 만들어낸 것이 효자 예수론이다. 변선환은 기독교가 가지고 있었던 절대적 배타성에 저항하며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강요하며, 주입하려는 서구 기독교의 움직임에 물음을 던진다. 예수만이 진리이며, 다른 종교에 있는 사람들이 믿는 종교는 허구이며 거짓이라 고 외치는 기독교에게 더 넓은 시각을 가져야하며, 다양한 문화를 존중함으로써 더 풍성한 종교의 깊이가 형성될 수 있음을 설명한다. 변선환이 관심을 가진 종교는 불교인데, 이 또한 한국의 문화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불교와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접점을 찾아 조화를 넘어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이를 통해 다양한 종교가 나눔과 대화를 통해 배타성을 띄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유동식은 삼국시대부터 조상들은 기독교와 조화를 이루고 있었으며, 그 실이 이미 존재하고 있음을 말한다. 예수가 보여주었던 길과 한국의 문화가 만들어낸 풍류도는 그 맥을 같이한다고 말하며 한국인이 한국의 문화를 제외하고 기독교를 이해하는 것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끝으로 21세기의 중요한 측면인 과학과 기독교의 관계 속에서 차별과 혐오의 움직임을 살펴본다. 창조과학운동은 자신들이 생각하고 있는 원리만을 가지고 창조를 이해하며, 다른 이들이 해석하는 것은 틀리다고 정죄한다. 과학은 다양성을 제시하며, 더 풍부한 나눔을 제시하는데, 이런 움직임에 대한 차별과 혐오의 모습이다. 이에 대해 존 호트는 상생의 길을 제시한다. 과학과 종교는 서로 다른 것을 이야기하며, 다른 분야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 아닌 서로를 위해 공존하며 상생한다고 설명한다. 창조과학운동에서 제시하는 한 줄기의 원리로 종교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 과학이 우리들에게 주는 다양한 시선과 사실들로 종교를 바라봄으로써 차별과 혐오의 시선을 벗어날 수 있다고 제시한다. 마크 해리스는 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논할 때, 신학적 논의만이 아닌 기독교의 성경 안에서 충분한 근거를 찾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창조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본성을 찾으며 이를 위해서 중요한 원리로 작요하는 것이 과학임을 말한다. 과학 안에 있는 수많은 사실과 법칙과 성경에서 제시되는 다양한 창조의 이야기를 비교하며 하나님의 본성을 찾아가고, 그 안에서 발견되는 우발성, 다양성으로 과학과 종교의 상생을 말한다. 중요한 것은 그 중심에 성경이 있다는 것이다. 이로써 차별과 혐오의 시선을 넘어 상생의 다리를 놓을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