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예술가들이 예술작업을 하며 체험하는 심리치유 과정에 관한 연구이다. 예술치료는 상담사가 예술의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내담자의 심리적 이슈를 다루는 것이다. 예술이 치유와 관계가 깊다는 수많은 체험적 보고가 있고, 예술치료는 이러한 체험에 근거하여 진행이 되고 있다. 하지만 예술의 치유적 효과에 대한 맥락과 과정에 대한 생생하고 구체적 이해는 부족한 실정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예술가의 예술작업 과정을 면밀히 분석하고, 예술작업 과정이 심리치유와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 탐구하고자 한다.
본 연구는 연구의 목적에 적합한 5명의 예술가를 사례로 선정하여 질적 사례연구를 수행하였다. 연구의 참여자들은 예술대학을 졸업한 이후 10년 이상 예술작업을 하고 있는 예술가로서 지금도 미술관이나 갤러리 등에서 꾸준히 전시를 하고 있다. 2018년 8월부터 2021년 9월까지 예술가들의 예술작업에 대한 체험을 참여관찰과 심층 면담을 통해 자료를 수집하였다. 그리고 예술가의 작품, 작업노트, 전시 도록, 인터뷰 동영상, 예술 관련 잡지의 인터뷰 등 기존에 생산된 자료를 연구 자료에 포함시켰다. 수집한 자료는 코팅, 분석하였으며 그 내용을 바탕으로 기술, 분석, 해석하여 논문을 구성하였다.
이 연구를 통해서 도출된 결론은 다음과 같다. 본 연구에 참여한 예술가들은 예술작업을 통해 자기 자신의 심리적 이슈에 대한 '직면'과 '탐색'의 과정을 겪는 것으로 밝혀졌다. 본 연구에 참여한 예술가들은 예술대학에 들어가서 자신만의 예술작업을 하기까지, 약 2년의 시간을 소요했다. 이들은 자신의 "취향"에 주목하거나 미술의 "유희적"인 측면에 주목하는 등 다양한 방법론과 시도 끝에 자신만의 작업 스타일을 구축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만의 작업 스타일을 구축한 예술가들은 "미친 듯이" 작업에 "몰입"하여 예술작품을 "많이" 만들어 나갔다.
본 연구의 참여자들은 처음부터 예술작업을 통해 자기 자신의 심리적인 이슈를 다루려고 의도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진솔"하고도 "진정성"있게 예술작업을 해나갔기에, 일정 시간이 지난 뒤, 자신의 작품에서 "반복되는" 얘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작업에서 반복되는 내용에 스스로 질문과 주의를 두고 예술작업을 지속해 나갔고, (자신만의 예술작업을 시작하고 약 3년 뒤) 예술작업과 자신과의 연관성을 인식하며 자기 자신의 심리적인 이슈를 '직면'하게 되었다.
본 연구에서의 직면이란 예술가가 자신의 예술작품을 만들고 만들어진 작품을 바라보는 순환적인 과정 속에서 본인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느닷없이 '지금까지는 인식하지 못했던 자신의 심리적인 이슈를 인식하는 그 순간'을 의미한다. 그래서 홍애수는 그림 작업을 통해 자신의 "모순된" 상태를 감지했고, 자신이 "아프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김허상은 사진 작업을 통해 자신이 "소리가 들리지 않는 비명"을 지르듯 사진을 촬영했다는 것을 명확히 인식하게 되면서, 자신이 "망가졌다"고 느끼게 된다.
또한 자신의 이슈를 직면한 연구의 참여자들은 계속해서 예술작업과 함께 자신의 심리적인 이슈를 '탐색'해 나간다. 자신의 심리적 이슈가 너무 수치스러워 보기 싫거나, 자신의 이슈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클 때, 두렵거나 회피하고 싶은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지만, 연구에 참여한 예술가들은 자신의 이슈를 피하지 않고 용감하게 예술작업과 함께 계속해서 자신의 심리적인 이슈를 '탐색'해 나갔다.
본 연구에서의 탐색이란 자신의 심리적인 이슈를 인식한 예술가가 '예술작업으로 자신의 이슈를 계속해서 탐색해 나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홍애수는 자신의 아픔에 근원적인 이유에 대해 탐색하면서 자신의 아픔에 대한 이유를 찾아나갔고, 결국 태어나면서부터 겪어야 했던 자신의 아픔에 대한 뿌리 깊은 이해를 하게 된 후, 자신의 모습을 "파괴"하기 시작한다. 김허상은 자신의 아픔이 너무나도 선명해서, 바로 자신이 어렸을 때 경험했던 "폭력"적인 "트라우마"가 떠올랐다. 그리고 김허상은 일상에 속에서 무엇인가를 봤을 때,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느꼈던" 공포나 무기력 그리고 슬픔 등의 감정이 내면에서 "올라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이럴 때마다 사진을 촬영해 나갔다.
이처럼 홍애수와 김허상 같은 예술가들은 자신의 이슈를 피하지 않고 계속해서 예술작업과 함께 자신의 심리적인 이슈를 '탐색'해 나갔기에 이들의 예술작업은 '치유'로 연결되었다. 연구에 참여한 예술가들은 예술작업을 통해 '억압된 감정의 분출과 해소',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 '예술을 매개로 한 소통'을 체험했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관점'이 "전환"되기 시작했다. 홍애수는 삶을 "고통"으로만 바라보던 자신의 관점이 전환되어 삶을 "행복"으로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으며, 이후 예술작업을 통해 고통과 행복을 통합하였다. 그리고 "가정폭력"과 그로 인해 받았던 상처에 집중됐던 김허상의 작업은, 점차 자신의 작품에도 "사랑"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제는 사랑을 주제로 하는 작업도 시도하게 되었다.
본 연구는 이러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네 가지를 논의했다. 첫째, 본 연구에 참여한 예술가들은 예술작업을 통해 의도하진 않았지만, 심리상담이나 예술치료처럼, 치유의 과정을 체험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둘째, 상담에 찾아온 내담자들이 상담자와 함께 자신의 심리적 이슈를 살펴보는 것과 달리, 예술가들은 자신의 이슈를 예술작업을 통해 혼자서 다루고 있었다. 셋째, 심리상담은 자신의 이슈를 명료히 하여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초점을 잡지만, 이에 비해 예술가들이 예술작업을 통해 경험하는 치유의 과정은 시간이 오래 걸렸다. 넷째, 본 연구에서 드러난 예술가의 예술작업의 과정은 자신이 사용하는 매체에 익숙해져 있고 표현할 수 있는 전문적인 기술이 있기에, 자신의 감정에 접촉하고 내면을 다양하게 표현함으로써, 자신과 자신의 이슈를 계속해서 탐구할 수 있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의 의의는 다음과 같다. 본 연구는 예술가들의 예술작업 과정을 세밀하고 심층적으로 탐구함으로써 예술의 치유적 과정과 맥락을 드러냈다. 따라서 본 연구는 심리학에서 예술을 치유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이론적 기초나 근거로써 활용될 수 있다. 그리고 예술가를 상담하는 상담사에게는 예술가를 이해할 수 있는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본 연구가 계기가 되어 예술과 예술가들에 대한 또 다른 질적연구가 심층적으로 이루어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