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삼관인(시청각중복장애인)의 독특한 의식현상 속에서 형성되고 파악되고 이해되는 '하느님' 개념의 현상학적이고 해석학적이며 언어학적인 연구이다. 보이지 않는 궁극적 실재를 지시하는 '하느님'이라는 단어가 무엇을 의미할 수 있는지는 개인의 경험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삼관인에게 있어 '가시'와 '불가시'의 경계 자체가 애초부터 무의미하기 때문에, 삼관인에게 '보이지 않으시는 하느님'이란 진술은 오관인(비감각장애인)에게와는 다른 차원과 의미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삼관인에게는 하느님만 안 보이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안 보이고. 하느님의 음성만 안 들리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안 들리기 때문이다. 그런 삼관인의 폐쇄된 의식 속에서 '하느님'은 어떤 관념으로, 어떤 존재로 인식되고 이해되는지를 검토해 보는 것이 본연구의 과제이다.
본연구의 연구자는 그 자신 삼관인으로서 살아왔다.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공간도 시간도 뒤죽박죽인 어둠과 침묵의 카오스 세계에서 모든 것을 손끝의 촉감으로 더듬어 경험하고 그 대상을 의식에서 구성해 가는 삼관인의 경험세계를 오관인의 시청각적 세계에 알려주는 것은 한 마디로 난감한 일이다. 언어는 기본적으로 은유이며 은유는 감각적 경험, 특히 시청각적 경험에 의존하는데, 삼관인인 연구자에겐 그런 감각적 자료가 주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삼관인은 촉각을 통해 세상과 대화하며 촉각언어(특히 점자)로 자신의 생각을 세상에 말한다. 삼관인에게 세계는 처음부터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오관인은 감각으로부터 추상(개념)으로 가지만 삼관인은 그 반대로 개념으로 감각의 결손을 대체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삼관인의 종교경험 역시 오관인과 다를 것으로 추정된다.
본연구는 그 같이 오관인과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삼관인이 어떻게 신앙언어를 이해하게 되는지, 그 의식과정의 현상을 기술하는 현상학적 연구이다. 그러나 신앙언어의 형성은 순간적 의식이 아니라, 긴 시간을 통해 수많은 경험의 내용들의 축적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단지 현재적 의식에 집중해서 파악되는 문제가 아니다. 삼관인에게는 외부의 감각적 세계와 차단되었다는 점에서, 의식현상이 전부인 세계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외부의 다양한 것들과 접촉되고 연결되는 삶을 산다. 그리고 그런 경험들은 삼관인 나름의 방식으로 기억 속에 축적되어간다. 따라서 삼관인의 자의식에 대한 기술은 과거에 일어난 사건들의 기억에 대한 반성이자 해석이다. 곧 본연구는 현상학적 기술이지만 동시에 역사적 과거에 대한 회고와 해석이기도 하다. 본 연구자는 이 같은 연구방법을 간단히 '자전적 성찰'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본연구는 한 삼관인의 자전적 성찰을 통해 삼관인의 '하느님' 이해와 경험의 내용과 특성을 기술하고 그 의미를 이해하는 작업이다. 이 연구의 핵심 과제는 '하느님'이란 신학적 단어가 삼관인의 의식 속에서 형성되고 이해되는 방식에 관한 것이자, 그 단어가 삼관인의 의식과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이해하는 일이기도 하다.
여기서 본연구자가 집중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언어'의 역할이다. 주요 소통감각이 삭제된 삼관인에게 만일 '언어'마저 주어지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까? 삼관인은 꽃을 볼 수 없지만 꽃이란 단어를 배우고 그 단어로 꽃을 '본다.' 삼관인의 이 같은 대상과의 소통과정을 궁극에까지 가져갔을 때, 궁극적 실재이신 '하느님'이라는 단어를 만난다. 삼관인은 하느님을 볼 수 없지만 '하느님'이라는 단어를 배우고 그 단어로 하느님을 '보고' '경험'한다. 그런데 하느님을 볼 수 없고 다만 언어로 하느님을 알게 되는 것은 삼관인만이 아니다. 오관인도 하느님에 관해서 만큼은 삼관인과 다를 수 없는 처지에 놓인다! 바로 이 깨달음이 본 연구의 핵심이다. '하느님.' 삼관인에게 이 단어는 수많은 단어들의 하나가 아니다. 이 단어는 삼관인의 의식에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열쇠말이다.
본연구에서 삼관인인 연구자는 자신이 언어를 매개로 어떻게 하느님을 만나게 되고 이해하게 되어왔으며 그로부터 무엇을 알게 되었는지를 기술한다. 또한 그에 따라 세상에 특히 교회에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를 말한다. 본연구는 한 삼관인의 매우 좁은 의식세계의 한계로부터 나온 연구이다. 그러나 삼관인의 독특한 경험세계의 이해가, 인간이란 실존의 경험을, 특히 그 '하느님' 경험의 세계를, 더 깊이 이해하는 단서가 될 수 있기를 연구자는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