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唐代, 618-907)의 예술은 대체로 이성주의에 입각한 전형적인 하나의 틀을 갖춘 시기였다. 아울러 감성주의가 교차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진 시기이며, 서예 또한 당 태종(太宗, 599-649)의 왕희지(王羲 303-361) 숭상으로 상법(尙法)의 해서가 절정기를 맞이하였다. 이후 경제 발전으로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개방적이고 자유로워지면서 당나라의 전반적 예술활동은 다양한 변화와 개혁을 일으키게 된다. 성당(盛唐, 713-756) 시기의 예술활동은 시가(詩歌)와 서예로 대표된다. 이 두 가지의 예술정신은 성당 음악의 바탕 속에서 상호 보완 작용을 하여 '성당기상(盛唐氣像)'의 풍모를 공동으로 구현하였으며, 그 교집합에 부합하는 서체는 바로 광초(狂草)이다.
당시(唐詩)와 서예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은 당나라의 음주문화이다. 술은 현실 세계를 잊고 자아의 자유로운 영혼으로 돌아가 인간 본연의 서정성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게 도와주는 매개이다. 당나라 시성(詩聖) 두보(杜甫, 712-770)의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는 당나라의 음주문화를 대표하는 시로서 그 속에 광초 서예가인 장욱(張旭657-750?)이 출현하기도 한다. 장욱의 초서는 당나라 문화예술의 표상인 '성당기상'을 대표하는 '광초'이다.
당대 초서는 초당(初唐, 618-712) 시기 손과정(孫過庭, 648-703?)의 〈서보(書譜)〉와 하지장(賀知章, 659-744)의 〈효경(孝經)〉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초서는 왕희지 서법을 계승하여 당대의 예술적 특징인 자유로움이 담겨 있다. 손과정의 〈서보〉는 상법 숭상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도 자신만의 독창적인 서정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심미 영역을 개척하여 장욱의 광초로 이행하는 토대가 되었다. 또한 하지장의 〈효경〉은 손과정의 금초와 장욱의 광초의 가교역할을 한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이후 장욱의 광초가 출현했는데 그의 광초는 주흥(酒興)을 통한 구속없는 자유로움과 호방함의 초서로 정감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방향성을 제시하였고 기존 서법의 한계를 극복하여 새로운 초서를 구현하였다. 한편, 회소(懷素, 737-799)의 초서는 장욱의 광초를 계승하였으나 장욱의 자유분방함을 마음속으로 이해하고 자신의 본성에 입각한 새로운 광초를 선보이며 광초의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장욱과 회소의 광초는 모두 주흥(酒興)을 통하여 자유분방한 초서를 썼으므로 '이광계전(以狂繼顚)'과 '전장취소(顚張醉素)'라는 말로 점철되었다. 이후 안진경(顔眞卿, 709-785) 서예의 출현은 중국 서예 역사에 또다른 변혁이었으며 그의 새로운 심미의식의 창신(創新)은 후대 행초서의 발전과 변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당대 초서의 특징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당시와 일체를 이루어 '성당기상(盛唐氣象)'의 풍모을 구현하였다. 다음으로는 예술적 표현방식의 혁신으로, 기존의 이성적 서법을 뛰어넘은 자연 친화적인 인간의 감성을 무의식의 예술세계로 승화시켰다. 마지막으로는 구속됨 없는 자유분방한 감성의 시각예술로 전환되었다.
이러한 초서의 특징을 바탕으로 당대 초서의 유형과 그 특질을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다. 하나는 후천적 학습을 통한 이성적인 감정의 표현으로, 유가의 중화미학(中和美學)을 실천한 유형이다. 다른 하나는 자연천성(自然天性)과 형상 밖으로 초월하는 자유로움으로, 노장사상을 실천한 유형이다. 전자의 경우 윤리와 법고(法古) 정신의 강조로 예술표현의 방법에 한계가 있는 반면, 후자의 경우는 기존의 모든 법을 초월하는 예술표현의 한계성이 없어짐으로써 무한한 발전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대의 초서는 이 양자의 특질이 동시에 내재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당대의 가장 큰 혁신은 무엇보다 광초의 성행이라 할 것이다. 이는 서예의 새로운 도전으로 서예가 순수예술로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