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는 다른 장르의 예술과 달리 학문과 수양을 겸한 至高한 정신세계와 융합되어 있다는 데 그 특징이 있다. 이런 점을 조선조 서예사에 적용하면 秋史 金正喜가 그 한 예에 해당한다.
본 논문은 조선조 후기 대표적인 서예가인 秋史 金正喜의 서화비평을 연구한 것이다. 이런 점을 구체적으로 추사의 일생 및 서화론에 나타난 書畵批評 形成 背景, 隸法重視와 書畵批評, 文人藝術과 繪畵批評 등과 연계하여 살펴보았다.
추사는 시, 서, 화를 서로 다른 별개의 예술 장르로 보지 않고 동일한 妙境에 속하는 것으로 보는 것을 강조하였는데, 이런 점은 서화비평의 핵심이 되었다. 이런 비평은 학문과 서화의 일치를 추구하는 가운데 나온 비평에 해당하는데 이런 점을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내용으로 규명하였다.
먼저, 추사의 書畵批評 形成 背景에 대해서는 추사가 지향한 예술정신의 형성과정을 알아보았다.
이런 점을 먼저 중국 서예가 교류와 서화 진적 체험, 제주도 유배가 서예인식의 변화에 끼친 사유와 연계하여 알아보았다. 추사의 서화비평은 다양한 인생역정을 통해 형성되었다. 특히 중국에 갔을 때 당시 阮元이나 翁方綱 같은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과의 만남은 추사의 비평 안목을 넓혀주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아울러 뜻하지 않은 제주도 유배는 추사 자신의 예술을 되돌아보면서 아울러 새로운 눈을 뜨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다음, 예법 중시에 따른 서화비평에 대해서는 먼저 추사가 존중한 예서에 대한 미의식에 초점을 맞추어 규명하였다.
추사의 예서 존중은 추사 서예비평의 근거가 될 뿐만 아니라 추사가 지향하는 서예미학의 핵심이 되기 때문이다. 추사는 예서의 淸高古雅 숭상하면서 古雅한 文氣와 士氣를 담아낸 것을 주장하였다. 이런 점은 서예는 단순히 문자가 갖는 실용적, 기교적 차원에서만 논의되는 예술이 아니라 철학과 미학에 바탕을 둔 예술임을 강조한 것이다. 운필과 묵법 겸비 사유에서 출발한 서예비평의 경우는 李匡師와 趙熙龍 작품들에 관한 평가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하였다. 서예 진적 유무에 따른 서예 비평의 경우 추사가 진본과 모본 여부와 관련된 비평을 중심으로 규명하였다.
마지막으로, 文人藝術과 繪畵批評에 대해서는 추사가 지향한 학문의 궁극적인 목표인 유학의 본래 정신인 성인의 도를 실현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 규명하였다.
추사의 학문 방법은 경전에 나타난 구체적인 사실에서 옳은 것을 찾는 것이고, 그런 경지를 실제 예술창작에 적용하고자 한 것이었다. 추사가 지향한 이 같은 예술정신은 최종적으로 서화는 군자예술임을 강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점을 먼저 문자향·서권기를 통한 회회비평에 대해 알아보았다. 서예는 전통적으로 기교 차원에서만 평가하는 예술이 아니고 '마음을 담아 표현하는 예술'로 이해하였다. 즉 서예창작을 중요한 점은 어떤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는가에 따라 筆跡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추사는 文字香과 書卷氣를 강조하였다.
추사가 지향한 이런 점을 군자예술론과 연계하여 규명함으로써 회화비평의 구체적인 내용을 규명하였다. 군자예술로서의 서화창작은 원대 화풍을 강조하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런 점을 倪瓚과 黃公望이 지향한 회화미학과 연계하여 규명하였다.
결과적으로 秋史는 이 같은 비평정신을 통해 서화는 군자예술이어야 함을 강조하고 아울러 詩理·書理·畵理·禪理의 一體를 강조하였다는 것을 확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