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원교의 창신적 서예와 그의 批評미학에서 드러나는 미학적 범주를 규명하는데 목적이 있다. 원교의 창신적 서풍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현실적 시대상과 그의 思想을 밝혀냄으로써 당시의 서예 연구에 대한 바른 시각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이런 점들을 증명하기 위해 대표적인 書藝家들에 대한 서예 풍에 대하여 평가하고 비평하는 방식을 더하였다.
조선 후기 서예는 청나라의 帖學과 碑學의 영향을 받았는데 圓嶠는 비학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서예가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중국에서는 金農(1687-1764) 등이 帖學의 書風속에서 새로움을 모색하였고 조선에서는 松雪體에서 벗어나 왕희지로의 복귀를 시도한다. 이는 李漵(1662-1723)에 이어 원교로 이어지며 왕희지로의 복고로 돌아가기 위한 왕희지 復古 運動을 진행하였다.
그의 복고 운동은 왕희지의 서체에 대한 위기감이며 송대의 尙意, 당대의 尙法의 서예에 대하여 晉의 왕희지 서예와 송설체 서예와의 差別을 두려고 하였다.
원교 서예의 원천은 性理學의 영향이며. 그는 실천 지향적 정신의 陽明學에서 서예 이론의 꽃을 피웠다. 서예는 고정 不變할 수 없으며 자유로운 형태의 만물은 모두가 다른 형태로 존재하듯 서예 또한 살아서 꿈틀 거리는 '生命體' '活物'로 규정하고 이에 書家의 자율성과 개성 넘치는 창의성으로 직면한 서예의 난국을 해결하려 하였다. 예술은 단순 踏襲이나 베낌이 아니라 先 法古 後 創新이라는 과정을 거쳐 완성되며 자율적 창의성은 철저한 心學추구에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원교의 가치관 속에서 만들어진 『書訣』은 그의 생각과 서법 체계 그리고 독창적인 미의식의 특성을 밝혀낼 수 있는 근거로 圓嶠의 서예관과 미적 특징을 밝히고자 하였다. 그 결과 원교의 서예는 자연과의 합일을 통하여 天機造化의 妙를 구하는 것에 있으며 이러한 형상을 드러나게 하여 자연의 모든 생명체와 같이 살아 움직이는 逆動性이 서예가 지향하는 審美的 가치임을 말하고 있다. 서예의 이상적 가치는 정법을 根本으로 한 結句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모든 서를 '活物'로 정의하고 모든 생명체는 살아 움직이므로 글씨 또한 각각 다른 모습으로 움직이는 개성적인 글씨를 강조하고 있음을 고찰할 수 있었다.
30대 이후 古碑帖들을 탐구를 통하여 서예 이론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審美學的 추구를 함으로 새로운 의식을 형성할 수 있었다고 보인다. 이를 바탕으로 나온 것이 학서론·고비첩 탐구와 그 진위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서예에 대한 탐구정신과 학식이 그의 비평 기준이 되고 이러한 기준을 바탕으로 역대 서가들에 대한 비평을 하고 있음을 살필 수 있었다.
또한 고법을 본받아 열심히 노력하여 어깨의 힘은 빠지고 그 부드러움이 손가락까지 전달되는 경지에 도달하면 자신의 서예를 創新하게 된다는 것이다. 學文에 대하여 깊이 연구하고 쌓은 지식을 知行一致의 정신으로 실천할 때 살아있는 나만의 書를 얻게 됨을 말하고 있음을 고찰할 수 있었다.
우리는 서예가 자연 속의 만물과 서예는 함께 공존하다고 보는 원교의 철학사상을 통해 확인한 창의적 자율성 추구, 拙樸 추구, 活物 추구, 生體 추구, 미평 미학 등의 審美 意識은 현실과 예술을 보는 관점을 제공하여 서예의 창신성 근대성 서론에 관한 談論에 긍정적 영향을 일정 부분 가져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