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가집성(農家集成)』은 1655년 신속(申洬, 1600-1661)이 편찬한 농서(農書)로 당대의 가장 중요한 농업지침서였다. 또한 효종의 전교로 전국에 반포하였고 지방 감영에서는 이를 번각하여 배포하였다.
본 연구는 이러한 의미를 지닌 『농가집성』을 대상으로 문헌 연구와 판본 조사를 통해 다음과 같은 내용의 서지학적 검토를 수행하였다
첫째, 편찬에 관한 연구로 저자의 가계와 이력, 『농가집성』의 편찬 과정을 조사하였다.
둘째, 간행에 관한 연구로 간행 과정을 조사하고, 현존본을 파악하여 문헌의 기록과 비교하였다. 현존본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한국고문헌종합목록(KORCIS)과 국가자료종합목록(KOLIS-NET)을 활용하였다.
셋째, 판본에 관한 연구로 판종을 구분하고 분석하여 각 판본의 특징을 기술하였다.
본 연구의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농가집성』의 저자 신속은 문충공 신숙주(文忠公 申叔舟)의 7세손으로 25세에 진사시에, 45세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그러나 친인척 관계였던 김자점(金自點)의 옥사사건으로 청직의 자리에는 오르지 못하고, 여러 지역의 지방관을 지냈다. 1655년에 공주목사였던 신속은 세종(世宗)의 「권농교문(勸農敎文)」을 서두에 수록하고, 증보한 「농사직설」과 주희(朱熹)의 「권농문(勸農文)」 그리고, 강희맹(姜希孟)의 「금양잡록(衿陽雜錄)」과 「사시찬요초(四時纂要抄)」를 엮어 『농가집성』을 편찬하였다. 그리고 송시열(宋時烈), 홍주세(洪柱世), 신속의 서발문을 수록하였다.
현존본은 46개 기관에서 126종을 파악하였는데, 금속활자본(현종실록자) 4종, 목판본(공주본 9종, 공주본계열 6종, 완산중간본 13종, 태인방각본 69종, 판본미분류 2종) 99종, 필사본 23종이다.
각 판본을 비교·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금속활자본은 현종실록자로 숙종초에서 영조 중반에 인출하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둘째, 목판본은 공주본, 공주본의 번각 계열, 태인방각본으로 구분할 수 있다.
셋째, 공주본은 농가집성의 초간본이다. 내사본(內賜本)을 통해 송시열의 서문을 삭제한 후에 반포한 사실을 알 수 있다.
넷째, 공주본의 번각 계열은 공주본계열과 완산중간본으로 구분할 수 있다. 공주본계열은 간행 기록이 없어 발행 사항을 알 수 없다. 완산중간본은 1656년에 전라감사 조계원(趙啓遠)이 효종의 유지대로 번각하여 배포한 것이다.
다섯째, 태인방각본은 1806년에 태인에서 전이채(田以采)와 박치유(朴致維)가 간행한 상업적 출판물이다. 내용의 구성이 다른 간행본과는 차이가 있고, 별책 부록으로 신속이 1660년에 간행한 『신간구황촬요(新刊救荒撮要)』를 수록했다.
여섯째, 필사본에는 완산중간본, 태인방각본 등을 저본으로 필사한 『농가집성』이 있으며, 1917년에 필사한 자료가 확인되어 후대까지 활용했음을 알 수 있다.
연구의 결과 『농가집성』은 지방인 공주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여 전국에 반포하고 지방의 감영에서 번각의 방식으로 재생산하여 정부의 권농 정책 의지를 알렸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또한 당대뿐 아니라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최고의 농업지침서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