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황은 고대 문명교류로인 실크로드의 천산북로와 천산남로가 만나는 교차점에 위치하여 서역의 문물이 중국으로 들어오는 관문이었으며 또한 서역으로 나가는 동양의 문물들이 집결되는 곳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지리적 위치 때문에 돈황에는 서역적인 요소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 막고굴(莫高窟)은 천불 동굴(千佛洞)이라고도 불리며 중국 감숙성(甘肅省) 주천시(酒泉市)에 소속된 돈황시(敦惶市)의 남동쪽에 있는 불교유적으로 1987년 세계문화유산(UNESCO) 등재되었다.
연주문은 연속적인 둥근 구슬로 구성되어 있으며 때로는 사변형으로 되어 있으며 주요 패턴이나 천의 가장자리에 배열되며, 때로는 꽃, 동물 또는 기타 모양으로 채워진 마름모 모양으로 구성되었다.
연구 방법은 문헌 연구와 돈황 막고굴 유물을 기반으로 연구하였다. 결론은 다음과 같다. 중국에서 유행하게 된 연주문 문양은 서역의 영향을 받았다. 현재 대부분의 학계에서는 페르시아 사산왕조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고 있다.
동아시아와 서아시아 문화예술의 융합과 접촉 관계로 북방의 이민족 간 이동은 실크로드를 따라 서로 교류하며, 서아시아의 연주문이 중국에 도입되었다. 그리고 중국 사람들은 연주문을 사랑하였다. 중국인들은 주요 문양을 바탕으로 변형하고 적용하며, 수나라와 당나라에서 유행하는 장식 문양이 되었다.
연구내용은 수나라와 당나라의 동식물 장식에 제한된다. 다른 시기의 연주문 문양 연구는 주로 위, 진, 수, 당 등 시기의 연주문 문양과 석굴 문양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 연구는 연주문을 분류하고 직선, 원형, 고리, 직사각형 및 다각형과 같은 기하학적 도형을 포함한다. 그림에는 동물과 꽃과 같은 다양한 문양이 포함되어 있다. 사산 문화의 영향으로 연주문이 북조에 나타났고 매우 단순하였다. 문양은 수나라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점점 더 복잡해졌다. 당나라 중후반에 들어서면서 연주문이 서서히 줄어들고 다시 단조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