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해인사 원당암의 9세기 말 가람배치를 추정하고, 가람의 정면에 등장하는 강당의 의미를 살피는 연구이다.
원당암은 802년 鳳棲寺로 창건되었다. 신라하대 봉서사는 왕실과의 두터운 관계에서 원당이라는 별칭이 생긴 후 20세기 들어 願堂庵으로 사명이 바뀌었다. 원당암은 가야산 자락에 있는 산지가람으로 자연석을 이용한 대석단 위에 조성되어 있으며, 이 대석단은 오늘날까지 큰 변화없이 유지된다.
원당암 경내에는 통일신라시대의 부재들이 산재하고 있다. 그 중 청석탑은, 신라 석탑사를 반영한 본고의 견해로는 9세기 말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석등은 청석탑과 미감이 같아 동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았다. 사역 내의 운두가 높은 초석을 통해서는 당대 원당암의 사격이 상당히 높았으며, 기둥이 있는 면석부재를 통해서는 금당과 강당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를 통해 9세기 말 원당암은 금당, 강당, 청석탑, 석등, 배례석 등을 갖춘 가람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9세기 원당암 가람배치에서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가람의 정면에 강당이 건립된 점이다. 신라 사찰의 강당은 금당의 뒤쪽에 건립하는 것이 일반적인 법식이지만 원당암의 경우는 강당이 금당 앞쪽에 배치되어 있다. 이는 신라 최초의 사례로 이 강당은 일반 사찰의 강당과는 다른 특별한 기능을 수행했던 공간으로 여겨진다. 즉, 이 공간은 사찰의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왕을 추복하기 위한 원당의 기능을 했던 것이다. 원당암의 강당은 신라하대 조사들을 위한 조사당이나 영정각의 건립에서 영향을 받았으며 이후 고려 진전 조성의 배경이 된 것으로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