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사도로서 복음의 사역을 완수하는 가운데 죽음의 문턱을 수없이 오가는 등 수많은 고난의 경험을 하였다. 바울은 이러한 고난의 경험을 일종의 목록(katalog)형태로 담아내었으며, 이것을 '고난목록'(Peristasenkatalog)이라는 용어로 정의할 수 있다. '고난목록'은 헬레니즘 시대의 문학 장르이며 신약성서에서도 전문용어로 사용되고 일종의 장르로 분류된다.
바울의 십자가 복음과 사도직에 대한 변증은 고린도후서 10-13장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바울이 풍자적이고 역설적인 강한 어조로 고린도교회 교인들을 책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가운데 고린도후서 11장 21b-30절과 12장 9b-10절에 자리한 두 고난목록은 헬레니즘 문학 양식인 '바보연설'(11:1-12:13)의 틀 안에 있으며, 바울의 신학사상은 그 안에서 펼쳐지고 있다. 이 두 개의 고난목록은 이곳에서 절정을 이루고 있으며, 바울이 그의 반대자들과 '자랑연설'을 주고받으며 복음과 사도직에 대한 주제를 펼쳐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바울이 그의 변증을 위해 '바보연설' 양식을 역설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내세울 것도 없고 자랑할 수도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자랑하려거든 주를 자랑하라'고 말한다. 바울이 말하는 '주를 자랑하라'는 고난목록의 신학적 모티브이기도 하다. 바울에게 있어 유일한 자랑은 고난을 자랑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바울은 자신이 '육체의 가시'를 가진 약한 존재인 것을 자랑하고, 자신이 사도로서 겪어야만 했던 수많은 고난의 경험들을 자랑하는 것이다.
고린도후서는 예수의 십자가 고난의 길을 부인하고 부활의 영광만을 추구하는 고린도교회 사람들과 바울의 반대자들에게 전하는 바울의 복음의 메시지이다. 인간이 이 땅에서 실천해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고난받으신 그 길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다. 부활의 영광은 바울의 반대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 땅에서 누리는 것이 아니다. 그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의 주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 누리게 될 것이다. 바울이 말하는 진정한 사도직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따라 주와 복음과 교회를 위해 기꺼이 고난받고, 그 고난을 기뻐하며 자랑하는 것이다. 진정한 사도로서 그리스도 일꾼의 자격은 영광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감당했는가에 달려 있다. 고린도후서가 전하는 복음의 중심에는 십자가의 고난이 있다. 따라서 진정한 사도의 직분은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다.
본 논문의 목적은 고린도후서 10-13장을 중심으로 바울의 고난신학과 사도직의 변증을 주제로 논증하는 것이다. 본문에는 두 개의 고난 목록(11:21b-30; 12:9b-10)이라는 장르가 나온다. 본 논문에서는 이 두 개의 고난목록의 범위 안에서 연구를 진행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