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종교도 외부 세계와 고립되어 존재할 수 없다. 종교는 주변 세계와 만나며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주고 받기 마련이다. 이 만남에서 종교는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예컨대 종교는 또 다른 종교 내지는 외래 사상과의 융합을 경험한다. 이른바 습합이 이는 순간이다. 또 종교는 타 종교가 지닌 형태를 차용하여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삼는다. 일종의 번안인 셈이다. 그런가 하면 외부적 요소와 조우한 뒤 짙은 폐쇄성을 보이며 종래의 전통을 수호하기도 한다. 타자와의 만남으로써 종교는 자신의 외연을 넓히고 내면을 다지며 발전한다. 종교를 응시하는 이같은 관점은 옛 종교의 실재(reality)에 도달하는 데에 커다란 도움을 준다.
고대 이스라엘의 종교는 고대 근동 세계의 일부로서 존재했다. 고대 이스라엘의 종교는 근동의 종교 전승과 무관할 수도, 근동의 사고방식과 단절된 채로 존재할 수도 없었다. 고대 이스라엘 종교 역시 근동의 종교 및 사상과 만나며 자신의 살을 찌워 나간 것이다. 그러므로 고대 이스라엘의 종교를 담지한 구약성서에는 무수히 많은 근동적 요소가 담겨 있다. 이같은 요소를 탐지하는 일은 본문의 본래적 의미를 파악하고 이스라엘 종교의 보편성 및 특수성을 이해하는 데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한다.
본고는 고대 이스라엘 종교가 근동 세계로부터 받은 요소인, 신전과 물의 모티프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를 개진한다. 근동인들은 신전을 태곳적 혼돈의 물을 잠잠케 하고 생명의 물을 흘려 보내는 곳으로 간주하였다. 이같은 우주론과 신전 신학은 고대 이스라엘로 유입되어 예루살렘 신전에 적용되었다. 예루살렘 신전이야말로 혼돈의 세력을 정복하고 생명의 물을 내보내는 곳이었다. 그리고 신전의 중심에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가 있었으니, 야훼야말로 질서의 수립자요 생명의 수여자였다. 이스라엘 종교에 아로새겨진 '신전-물'의 심상은 포로기와 그 이후를 거쳐 세대에서 세대로 전달되었다. 요컨대, 고대 이스라엘 종교는 고대 근동의 신전-물의 모티프를 차용하여 야훼에게 전용시켰고 이를 후대로 전승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