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동아시아 서예사에서 서성(書聖)으로 추앙받고 있는 동진(東晉)시대 왕희지(王羲之, 303~361) 서론(書論) 중에서 서예창작과 관련된 필법론(筆法論)이 전승(傳承)된 사례를 규명한 것이다. 왕희지의 서예 이론과 창작은 서예역사상 현재까지도 전범(典範)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에 왕희지의 영향을 받은 후대 서가들의 작품에서 그의 필법론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되어 계승되었는지 역대의 주요 작품을 통해 확인하였다.
왕희지의 필법에 관한 이론은 「필세론12장병서(筆勢論十二章竝序)」를 비롯한 「제위부인필진도후(題衛夫人筆陳圖後)」, 「서론(書論)」, 「용필부(用筆賦)」, 「자론서(自論書)」, 「기백운선생서결(記白雲先生書訣)」등이 대표적으로 전한다. 이들 서론들은 대체로 창작에 심의(心意)가 있어야 한다는 '의재필선(意在筆先)'과 '서여기인(書如其人)'이라는 심미원칙이 담겨있어서 후대 서가들에게 서예미학의 기준이 되었고, 동아시아 서예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왕희지의 필법에 대한 생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난정서(蘭亭序)〉를 손꼽는다. 〈난정서〉는 천만변화의 자태와 조화로운 자형 및 결구가 법식에 구속되지 않으면서도 천연스러운 서체미를 실현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왕희지의 필법에 영향을 받았던 그의 아들 왕헌지(王獻之)는 부친을 학습하여 이왕(二王)의 반열에 오르는 성취를 이루었다.
왕희지의 필법을 전승한 당대(唐代)의 이세민은 왕희지의 서예가 지닌 진선진미(盡善盡美)와 중화(中和)의 아름다움을 가장 이상적인 서법(書法)으로 삼아 장엄하면서도 엄격한 서풍으로 발전시켰다. 원대(元代)의 조맹부(趙孟頫)는 왕희지의 복고주의를 제창하면서 운필의 기복(起伏)과 역세(逆勢)를 취하였다. 그는 왕희지의 필법을 토대로 측봉(側鋒)을 응용하여 유려한 서풍을 형성함으로써 중국은 물론 고려말 조선초에도 영향을 끼쳤다. 명청(明淸)시대는 왕희지의 전통적인 필법을 전승하는 가운데서도 조형 상에서 많은 변화를 가져옴으로써 왕희지를 재해석하는 풍토가 성행하였다.
왕희지의 필법은 천여 년 동안 동아시아 서예사에서 면면히 이어지는 가운데 각 시대마다 그의 필법에 대한 계승과 창신을 통해 새로운 서체나 서풍으로 응용되었다. 즉, 왕희지가 필법에서 '의(意)'를 중시한 것처럼 그의 필법은 변함없는 계통성을 지니면서도 한편 각 시대마다 그 필법은 다양한 창작방면에서 불변(不變)과 변통(變通)의 양면성으로 전승됨을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