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팔하(八下) 서석지(徐錫止, 1826-1906)가 저술한 서예이론서 『필감』의 서법론(書法論)과 서예관(書藝觀)을 규명한 글이다. 팔하는 대구의 달성(達城) 서씨 가문 자제로, 대구영남 서단을 무대로 활동한 서예가이다. 유년기에 창암(蒼巖) 이삼만(李三晩, 1770-1847)에게서 글씨를 배웠으며, 관직에 진출하지 않고 서예에 매진한 당시로서는 유례를 찾기 힘든 전문 서예가였다. 본고는 이러한 팔하 서예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필감』의 전문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그의 서예에 관한 이론적 인식 등을 고찰하였다.
첫째, 팔하의 생애와 필감의 서지사항을 고찰하였으며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팔하는 대구 서단을 무대로 활동한 전문 서예가로서 11세의 나이에 창암에게 글씨를 배워 필력을 얻었고, 만년에는 영남지역 사족들이 다투어 그의 글씨를 구할 정도로 명성을 떨쳤다. 타 지역에 비해 예술적 기반이 취약했던 대구에서 출현한 팔하의 존재는 대구 미술 문화 전개의 연원이라는 의의가 있다. 『필감』은 아들 경순에게 전하기 위해 편찬한 것으로 조선말기에 이르러 보기 드문 전문 서론서이다. 일획법과 영자팔법의 기본 서법부터 집필법, 운필법, 결자법, 용묵, 임고론, 서체론 등 팔하의 서예이론을 총괄한 내용이 담겨 있고 부록으로 서법원인과 제가품평, 「진초천문」 임서본이 실려 있다.
둘째, 『필감』의 서법론에서는 일획법과 영자팔법, 집필법, 운필법, 결자법으로 분류하여 고찰하였으며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일획법과 영자팔법은 획도(畵圖)를 싣고 자연물에 비유한 설명으로 학서(學書)를 용이하게 하였고, 집필법은 지실(指實)·장허(掌虛)·현완(縣腕)·관직(管直)을 중요시 하였고, 운필법은 장봉(藏鋒)과 '無垂不縮', '承上接下'의 원리를 중요시 하였고, 결자법은 소밀(疏密)의 조화와 참치(參差)를 중요시하였다.
셋째, 『필감』의 서예관에서는 임고, 서체론, 품평론으로 분류하여 고찰하였으며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임고는 취장보단의 학문적 자세와, 서체는 전서로써 예서의 법도를 세우고 해서로써 행서의 법도를 세우며 장초로써 초서의 법도를 세울 것을 중요시 하였다. 아울러 품평 방식은 서예가들을 서로 비교하여 등급을 나누는 것보다 개개인의 풍격을 면밀히 관찰하는 것을 중요시 하였다.
이상을 통해 『필감』은 일획법, 영자팔법, 집필법 등이 고전의 학서론에 근거하여 체계적인 서예이론을 전개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법고창신' 과 '취장보단' 의 서예관을 지향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팔하의 서론은 서예학습과 창작에서 지침으로 삼을 수 있는 풍부한 내용과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한국서예사에서도 주목받을 만한 이론적 성과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