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봉 고봉주는 일제 강점기 시기에 일본에서 활동한 한국의 근대 서예가이자 전각가이다. 독립운동에 가담하여 금고형을 받기도 하고, 일본대학 사회학부에 진학하였으나 학비가 없어 중퇴를 하는 등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서예·전각가로서 일본에서 오랜 시간동안 작가 생활을 영위하다가 귀국한 석봉은 鐵農 李基雨, 心堂 金齋仁, 晴江 金永基와 함께 韓國篆刻協會를 창립하고, 石軒 林栽右, 靑藍 田道鎭 등 현대 한국 전각계를 대표하는 작가들을 지도하는 등 한국의 근·현대 서예와 전각에 뚜렷한 자취와 흔적을 남겼다.
고법에 충실할 것을 강조한 석봉은 그의 작품 중 절반 정도가 고새와 진·한인의 풍격을 이루고 있을 정도로 전각예술의 미를 창조하는 근본이 고새와 진·한인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서예에 있어서도 고전과 고비, 법첩을 다각적으로 연구하고 다양한 시도를 모색하면서 이를 전각에 응용하여 독특한 자가풍을 이룩하였다.
그는 평생에 걸쳐 겸손을 미덕으로 삼았으며, 추사를 흠모하여 추사의 예술관인 "가슴속에 문자향서권기가 있지 않으면 그것이 팔뚝아래 손가락 끝에 드러나 피어날 수 없다."를 가슴 속에 품고, 평생을 고난과 역경에 좌절하지 않고 부단한 노력과 꾸준한 자기 개발에 매진하였다.
본 논문에서는 석봉 고봉주의 전각 예술이 형성된 시기별 흐름을 통하여 그의 전각연원과 자가풍을 분석하여 그의 전각세계를 파악해 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