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영국의 18세기에 기독교 부흥 운동을 일으킨 사람으로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를 떠올린다. 하지만 그와 동시대를 살았고, '야외설교'라는 독특한 설교방식을 통해서 영국의 '복음주의'를 개척한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 1714-1770)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당시 영국의 개신교는 크게 영국 국교회(성공회), 스코틀랜드의 장로교, 그리고 국교회에 반발하여 등장한 청교도 등이 있었다. 이에 존 웨슬리는 국교회 사제로서 청교도의 신앙에 입각하여 메도디스트 운동(Methodist Movement)을 조직화하였고, 이것이 후대에 감리교로 발전하게 된다.
한편, 앞에서 언급한 조지 휫필드는 존 웨슬리가 펠로우(fellow: 오늘날 대학 강사와 유사함)로서 옥스퍼드(Oxford University)에서 지도하면서 동시에 홀리 클럽(Holy Club)이라는 신앙 모임의 리더(leader)였을 때 동생 찰스 웨슬리(Charles Wesley)의 소개로 그 모임에 합류하게 된다. 홀리 클럽은 엄격한 규율을 지킴으로 인해 다른 학우들로부터 '메도디스트'(Methodist: 규칙쟁이)라는 별칭을 얻게 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메도디스트'라는 용어를 잠시 살펴보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비록 존 웨슬리가 시작한 홀리 클럽이 '메도디스트'라고 불리었지만 18세기 영국의 상황을 논(論)할 때 메도디스트(홀리 클럽 활동 이후에)는 교파를 초월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한 신앙의 결단을 촉구하는 설교운동, 즉 '복음주의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메도디스트 운동을 단순히 감리교 운동이라고 치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실제로 웨슬리가 주도하는 웨슬리의 메도디스트가 있었는가 하면, 휫필드가 주도하는 휫필드의 메도디스트가 있었다. 그런데 메도디스트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야외설교'를 통해 복음설교를 휫필드가 먼저 시작했다는 점에서 최초의 '메도디스트 설교자'가 바로 휫필드라고 할 수 있다. 본 논문은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휫필드의 생애와 설교를 조명하고, 휫필드가 최초의 메도디스트 설교자였다는 점을 부각시키고자 쓰였다. 특히 휫필드의 설교 분석에는 설교학자인 이성민의 "'몸-뜻' 해석학"을 적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