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순력도』 (보물 제652-6호)에는 1702(숙종 28)년에 제주목에서 시행된 지방관청의 의례와 주악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제주풍류회-두모악'은 지역의 역사문화 콘텐츠에 관심을 기울이던 중 〈제주양로〉 장면의 도상을 근거로 2018년부터 2020년까지, 3회에 걸쳐 〈제주양로〉를 재현한 바 있다. 동 재현 행사의 시도와 진행에 대하여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기획자로서 의례와 주악에 대한 역사적 맥락과 공연 콘텐츠 구성의 허용 범위에 대한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탐라순력도』의 〈제주양로〉와 관련된 문헌 연구와 의궤 및 도상자료를 활용한 무대 작품 사례를 토대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첫째, 〈제주양로〉의 의례 근거는 지방 관청에서 주관한 양로연이라는 점에서 조선전기에 정비된 〈주부군현양로의〉(1432, 세종14)에서 찾을 수 있다. 〈주부군현양로연의〉는 『세종실록』 「오례」 에 '개성부급제주부군현양로의' 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었고, 성종 때 편찬된 『국조오례의』 (1474)의 양로연 의주로 정비됨에 따라 전국의 지방관청에서 준용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르면 지방의 양로연은 양로들에게 절을 올리는 배례(拜禮)를 중심으로 진행되었으며, 절차에 따르는 악무는 각처의 형편에 따라 가감될 수 있었다.
둘째, 왕실에서 주관한 궁중 양로연의 경우, 일반 연향에 준하여 악무가 시행되었다. 조선시대 연향의 악무 구성은 연향의 계기와 대상, 규모, 시기에 따라 차이가 있었음이 의궤 등의 원전자료 및 관련 연구성과를 통해 확인된다. 이에 비해 지방 관청에서의 연향 악무는 일부 문헌과 도상이 있을 뿐이어서 〈제주양로〉의 재현 근거로 삼을 만한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조선시대 궁중 및 지방관청의 연향에서의 악무 레퍼토리가 의례별로 고착화된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취사선택되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제주양로〉에 표현된 연주와 춤은 조선시대 '연향악무'라는 큰 범주 안에서 어느 정도 융통성 있게 선별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점은 국립국악원을 비롯한 국가기관의 '원전 재현 공연' 및 '무대화'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이에 따라 『탐라순력도』 의 〈제주양로〉 재현은 조선전기에 정비된 〈주부군현양로연의〉에 제시된 의례절차 및 조선후기 궁중 및 지방관청에서 통용된 악무레퍼토리를 근거로 삼는데 무리가 없다고 판단하였다.
한편, 본 연구에서는 재현행사의 역사적 근거 뿐 만 아니라, 현대에 시행된 재현행사의 정확한 기록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제주풍류회-두모악'이 시행한 3차례의 행사 중 2018년의 재현을 옛 의궤의 형식을 참고하여 기획의도와 일시, 장소, 출연진의 구성과 역할, 의례의 절차와 악무의 시연, 예산, 소요물품, 행사 후 정산에 이르는 전반적인 내용을 기술하였다. 이 기록은 향후, 동 행사의 재현은 물론, 주악 장면이 묘사된 『탐라순력도』 의 〈귤림풍악〉, 〈병담병주〉, 〈고원방고〉 등의 재현에도 참고 될 수 있을 것이며, 지역의 역사문화콘텐츠에 기반을 둔 문화예술프로그램들이 일회적인 시도에 그치지 않고, 점진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되리라고 본다. 뿐만 아니라, 『탐라순력도』 의 의례 및 주악 재현행사는 제주의 민속예술 외에 궁중 문화와 연결된 또 하나의 공연문화의 흐름을 일구어나갈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으므로 지역 고유의 소중한 예술 문화유산콘텐츠로 확장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