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당시 마한의 해양사상을 토대로 한 공세적인 대외정책과 해군전략을 통해 강대국으로 부상해던 미국은 그의 해양지정항적 관점을 계승하여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초강대국의 지위에 올랐으며, 탈냉전 이후 역사상 전무후무한 전 세계적 해양패권을 장악했다. 하지만 이러한 미국도 냉전 종식 후 약 20년이 지난 2010년대부터 중국식 '해양굴기'의 본격적인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당시 '미국의 세기'가 시작되는데 큰 공헌을 했던 마한의 해양사상이 21세기 들어서는 미국의 패권을 위협하는 전략적 경쟁국인 중국의 대외정책과 해군전략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필자는 본 연구를 통해 2010년대 이후 본격화된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경쟁, 특히-태평양 해양패권 경쟁의 근원이 무엇인가 살펴보기 위해 마한의 사상을 중점적으로 연구할 것이다. 특히, 21세기 미국이 내세우고 있는 인도-태평양 전략이 마한의 사상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판단하고 그의 사상이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당시 미국이 강대국으로 부상했던 시기에 그들의 대전략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마한의 해양군사사상을 '지정학적 위협인식' 기반의 '대외정책론'과 '해군전략론'으로 구분하고 있다. 먼저, 마한의 대외정책론이 갖는 궁극적 목표는 전 세계의 지정학적 상황을 고려하여 미국이 세계적으로 강대국으로 도약하게끔 만드는 것이었다. 또한 마한은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대전략이 지정학적 위협인식에 따라 가변성을 가져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팽창주의'와 '고립주의'라는 대외정책 스펙트럼의 양극단 사이에서 지정학적 조건의 변화에 따라 미국의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선택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봤다. 마한은 이를 수행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해군력 증강, 자유무역 증진과 같은 유형적 국력뿐만 아니라 당시 미국이 서구 열강에 비해 상대적 우위를 갖고 있던 '도덕적 영향력'과 같은 무형적 가치까지 활용할 것을 제시했다.
다음으로는 마한이 추구하는 해군전략의 목표는 단순히 양질의 대형 함정을 만들어 해군력을 증강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았으며, 흔히 많은 이들이 오해하듯이 그는 무제한적인 전투 함대 간 함대 결전만을 추구하지 않았다. 마한은 대외정책의 핵심적인 수단으로 해군전략을 정의했다. 결국 마한은 해군전략의 목표가 국가 차원의 대외정책을 수행하고, 국익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곤봉(Big stick)'이 되는 것이라 봤다. 그는 이러한 해군전략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주력함 중심의 공세적 전투 함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으며, 이 함대의 집중을 통해 '해양우세' 달성을 추구했다. 또한, 전투 함대가 해외에서도 원활하게 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전진기지 확보'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러한 마한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았던 20세기 초 당시 미국의 매킨리, 루스벨트, 태프트, 윌슨 행정부는 시기에 따라서 그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마한이 주장한 대외정책론, 해군전략론과 유사한 맥락에서 행정부의 대외정책을 수립했으며, 이를 위해 해군전략을 효과적인 도구로써 활용했다.
21세기 첨단 기술의 시대에도 마한이 주장했던 해양군사사상의 유효성은 지속되고 있다. 마한의 사상에 대한 보다 심층적인 이해를 통해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강대국의 대외정책과 해군전략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은 엄정한 국제정치적 현실 속에서 앞으로도 계속해서 요구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준비하고 있는 대한민국 해군 역시 단순히 첨단기술의 발전에만 이목을 집중시킬 게 아니라, 해양군사사상의 기원인 마한의 대외정책론과 해군전략론을 곱씹어보면서, 이를 어떻게 21세기의 상황에 부합하도록 현실에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노력을 계속해나가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