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에서는 이성복 시에 나타난 '꽃'이 가진 의미의 다양성, 함축성, 상징성을 살펴보았다. 꽃의 의미를 분석함에 있어 단순한 언어 의미에 한정하지 않고 시인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여 해석의 범위를 한층 더 넓혔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이성복에 대한 기존 연구는 시적 자아와 시적 대상의 대응 양상 관계를 일차적 이미지 분석에서만 그쳤다. 따라서 각 시집의 내재적인 분석은 충실히 이뤄졌다 하더라도, 시집을 전체적으로 묶을 수 있는 중심 이미지에 대한 탐색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는 한계가 나타났다. 이 논문에서는 부정적 현실에 대한 이성복의 의식을 주로 시적 자아 중심으로 밝히는 데 그치고 있는 기존 연구의 한계를 넘어서, 꽃이라는 중심 이미지의 다양한 내포와 변용 양상을 체계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이성복 시의 미학적 특징을 파악해보려 했다.
이 논문에서 이성복의 시를 '꽃' 중심으로 연구한 이유는 '꽃 이미지'는 이성복 시에서 핵심 소재로 등장하고 있으며 시세계 전반에 걸쳐서 96회 이상이나 나타나고 있는데, 이성복의 시에 나타난 '꽃 이미지'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본고에서는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꽃'과 관련된 현실과 타자와의 관계가 존재론적 인식까지 확대되는 과정을 유형화하여 밝혔다.
II 장에서는 이성복이 처한 현실을 살펴보고 현실에 대한 인식과 상처, 그 상처를 치유하는 '꽃'의 기능에 대해 살펴보았다. 화자의 기억이 '꽃'으로 상징되어 나타나는데 '무우 꽃'은 화자의 아름다운 기억을 상징하지만 그 추억은 현재의 시점에서 흔들리고 있으며 기억 속의 '꽃'은 부정적 아버지에 대한 반어적 표현으로 나타남을 알 수 있었다. 또한 '꽃'은 화자의 부정적 기억으로 인해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현상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화자는 '꽃'이 피는 상황을 의인 화하여 '당신-꽃'을 떠나보내는 과정에서 수반되는 '나-화자'의 아픔과 희생이 뒤따르는 개화의 과정을 통해 희망의 기억을 바탕으로 부정적 체험의 극복을 드러냄을 밝힐 수 있었다. 또한 '어머니'가 나오는 다수의 시에서는 삶에 대한 애정, 죽음에 대한 담대함, 고통을 인내하려는 자세가 주된 내용을 차지함을 파악했다. 특히 '어머니'는 다른 어떤 인물보다 '다양성'의 존재로서 현실적이고, 미적이며, 독립 된 주체로 그려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즉, 시인은 현실의 치욕이 간단치 않음을 통찰하고, 부정한 세계에서 어머니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통해, 현실 그대로의 모습과 병든 세계를 수용하는 모성원리를 '꽃'을 통해 표현했음을 알 수 있었다.
III장에서는 이성복 시에서 '꽃 이미지'에 나타나는 주체와 타자의 관계 유형을 분석하고, 작품의 의미 효과로서 나타나는 타자의 양상과 기능 중심으로 '꽃'과의 연결고리를 확인하였다. 주체와 타자의 관계 유형이 현실적 사회 문제가 가족의 문제로 나타나는데, 이는 혼란스러운 사회를 이루는 개별적 존재가 개인이기 때문에 개인적 자아와 사회적 자아가 별개의 문제가 아님을 의미한다. 화자는 현실에서 느끼는 허무 의식으로 인해 방황하지만 이내 자신이 한 사회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되고 현실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한다. 이를 통해 이성복 시에 나타나는 '꽃'은 끊임없이 타자를 환기하고 내면화 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표현적 장치임을 알 수 있다. 즉, '꽃'은 시각화된 이미지에 입각하여 자연 그대로 재현되는 것이 아니라 화자가 타인에 대한 연민을 지니고 소통하려는 태도를 상징한다. '꽃'은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 타자에 대한 '공유, 내면, 공감, 관계, 연민, 사랑'의 의미로 재생산됨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화자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꽃'은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매개체가 되고 추억의 연쇄 반응으로 인해 화자는 자신의 삶과 존재적 한계에 대해 오랜 시간 동안 성찰한다. 이러한 성찰적 태도와 함께 현실에 대한 절망적 인식이 드러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종교적 구원을 받으려는 태도가 '흰 꽃'으로 상징됨을 알 수 있었다.
IV장에서는 생명과 죽음의 상응과 존재론적 인식의 '꽃'에 대해 살펴보았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생각을 드러내고 시인은 언어를 통해 사유를 표현한다. 이성복에게 글은 생명과 같고, 글을 쓰고자 하는 욕망은 생명의 근원으로 작용한다. 이성복은 실존하는 '꽃'의 실재를 통해 그 속의 은밀한 내성과 울림에 귀 기울이고 이를 삶의 언어로 재현하고자 했다.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물질적, 정신적 욕망을 지닌 상태이다. 욕망은 반드시 노력을 수반한다. 욕망이 결핍된 자는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목숨만큼만 멈춰 있는 것이다. 이성복은 이를 '욕망=언어=텍스트'의 관계로 보았으며 인간은 언어를 통해 생각을 드러내고 시인은 언어를 통해 사유를 표현함을 알 수 있다. 죽음은 인간에게 피할 수 없는 보편적 문제이고, 인간의 보편적 현상을 시적 대상으로 바라본 이성복 시에서 존재와 죽음의 인식은 중요한 부분이다. 존재와 죽음은 실로 순환구조에 놓여있다. 어떤 현상의 소멸은 다른 현상으로 대체될 수 있으며, 결국 그 현상의 이면에는 존재의 문제가 숨어 있다. 이러한 기준에서 이성복의 시는 현실이라는 시간의 개념 속에서 존재 또는 죽음 등 부정의 상태로 그 존재 가치를 '꽃'을 통해 나타냈다.
이 논문은 이와 같이 이성복 시의 현실인식, 타자 지향성과 자아 성찰, 존재탐구 등 다양한 층위에서 시의식과 밀접한 관련성을 보여 주는 '꽃 이미지'를 살펴보았다. '꽃'은 아름다움 자체로서 자연과 모성을 상징하면서 동시에 이성복 시인의 존재탐구 대상이 되기도 하며 유한성을 깨달아가는 인식의 과정을 보이기도 했다. 이성복은 '꽃'을 통하여 현실의 질곡을 극복하는 희망을 발견하기도 했다. 이처럼 '꽃'을 통해 다양한 시각으로 '꽃의 의미 범주와 수용양상'을 밝혔다는 점에 본 논문의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