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의 목적은 왜 우리는 텔레비전을 끌 수 없으며, 꺼서도 안 되는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유지한 채 즐겁게 텔레비전을 시청할 수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텔레비전은 문화를 구성하는 사회적 동학의 핵심으로, 생산과 재생산의 지속적인 과정 속에서 의미들이 흘러 다니는 장소이자 수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텔레비전은 기만적이며, 선정성과 폭력성이 난무하고, 중독을 야기하는 매체라는 부정적 편견에 시달렸다. 기독교는 텔레비전의 내용 분석에만 천착하느라 텔레비전이 행하는 본질적인 역할들을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다. 또 '미디어 금식'과 같은 운동을 통해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 것이 거룩하고 경건한 생활이라는 느낌을 주곤 했다. 필자는 텔레비전에 대한 신학적 연구가 미진한 까닭은 텔레비전이 지닌 복잡다단한 특성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더불어 텔레비전 오래된 미디어 수용자 이해도 스스로 문화 청지기를 자처하는 기독교인들과 괴리가 있다.
이를 위해 먼저 오늘날 텔레비전의 기본 특성들과 변화를 고찰할 것이다. 현재의 상황에 맞지 않는 연구는 기독교인들에게 어떤 도움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전의 연구에서 진지하게 다루지 않은 '능동적 수용자'개념을 미디어 연구가이자 문화 이론가인 존 피스크를 통해 살펴볼 것이다. 능동적 수용자란 대중문화 텍스트로부터 자신이 속한 하위 문화와, 자신이 지닌 사회적 경험에 맞는 의미와 즐거움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수용자의 대한 이해가 넓어져야 텔레비전 시청이 갖는 의미와 가치도 함께 넓어질 수 있다. 그 이후에 즐거운 기독교 문화 해석학을 제시할 것이다. 여기서 즐거움이란 프로그램이 주는 단순한 웃음과 재미가 아니다. 반대적 독해라는 강박에서 벗어나 주어진 텔레비전 텍스트 안에서 마음껏 유영하며, 시대의 관심에 풍덩 빠져드는 것이다. 또 텔레비전 텍스트에서 추출한 자원으로 기독교인만의 고유한 표시와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위해서는 '문화적 문해력'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본 논문은 일상에서도 문화를 해석할 수 있는 문화적 문해력을 기를 것을 요청하는 신학자 케빈 밴후저의 '문화신학'을 하나의 방법론으로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