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영상 시대, 온갖 이미지들이 범람하는 현실에서도 우리를 강렬한 체험으로 이끄는 한 장의 사진이 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지표이론을 중심으로 전개되어온 사진이론은, 사진의 생산과 수용 환경의 변화 속에서도 부인할 수 없는 이 정서적이고 감각적인 효과를 설명하는 데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에 대해 최근의 연구들은 지표이론의 유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지표이론이 논거로 삼았던 고전이론들의 재고를 요청하고 있다. 지표이론에 의해 축소 해석되어온 사진이론의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 누락되었던 풍부한 함의를 복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본 논문은 사진 이미지가 촉발하는 신체적이면서 정신적인 특별한 경험을 설명하기 위한 시도로서, 이제까지 사진이론의 중심축을 형성해온 지표이론의 계보와 반향에 대해 고찰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하여 최초로 사진의 존재론적 규정을 제시했던 앙드레 바쟁에서 출발하여, 회화와 다른 사진만의 고유한 존재론을 구축하고자 했던 지표이론이 독자적인 사진이론으로 자리 잡게 된 과정을 검토할 것이다. 이어 물리적 인과성에 치중된 지표론의 한계에 대해 제기되는 비판적 논의들을 따라, 사진 이미지의 탈기호적·탈코드적 요소들, 지표론이 간과해왔던 사진의 풍부한 이미지적 특질들을 소환해보고자 한다. 지표이론의 형성에 강력한 계기와 동인을 제공했던 앙드레 바쟁의 사진론과 로잘린드크라우스의 지표 논의의 맥락을 재확인한 후, 롤랑 바르트의 후기 사유가 펼쳐 보이는 풍부한 이미지의 세계를 탐구해보는 과정이 이에 포함될 것이다. 또한 이들의 사유를 선취하고 있는 앙리 베르그손의 이미지론과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의 사진론이 이와 공명하는 지점을 제시함으로써 사진 이미지의 존재론적 지평의 확장과 여전히 유효한 사진의 윤리적 함의와 실천적 힘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