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치호(尹致昊)에 대한 이 연구는 그가 일기를 쓰기 시작한 초기 20여 년간의 일기(1883-1906)에 나타난 신앙에 대한 분석이다. 특별히 그의 회심 전 청년기이자 신앙형성기에는 많은 사상의 변화가 존재했다. 그의 일기에는 회심과정에서 성령의 중생이 마음을 회심케 하는 부분들이 나타난다. 타지에서의 배움과 삶을 지속해가며, 자신과 나라를 위해 신에게 도움을 구하고, 또 그런 그의 사크레멘탈(sacramental)한 성정은 상해 중서서원의 경건주의적 분위기와 결합하여 회심으로 이끈다.
이 회심은 복음의 향기를 짙게 풍기던 동인사 학당의 교장 '나카무라(中村正直)'와 조선에서 서구사상을 접하게 해 준 주한미국공사 '푸트(Lucius H.Foote)', 그리고 주 안에서의 스승이자 아버지 '알렌(Young J. Allen)'과 '본넬(W.B. Bonnel)'의 영향이 깊었다. 그들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 듣고, 성경공부와 예배를 병행하며, 인격적인 하나님에게로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 비록 유교적인 사고관과 그간 행해왔던 방종들은 윤치호가 회심하는 것을 방해했지만, 끝내 그는 행실을 바로잡으면서 신앙인으로 거듭난다. 그리고 본넬의 권고를 받아 세례를 받는다. 이는 우리나라 첫 양반출신 감리교인이 된 경우이며, 전통적인 유교사상과 관습을 타파하고 도덕적·윤리적으로 성숙한 기독교인이 된 사례이다.
회심 후, 윤치호는 당시 미국 기독교의 부흥 영향으로 건설되어 발전하던 벤더빌트와 에모리 대학교에서 수학하는 기회를 얻는다. 그러나 여전히 약소국가이자 제국주의의 침탈 속에 있는 조국의 상황, 홀로 타지에서 재정적인 어려움과 외로움에 발목 잡힌 그는 일기에 대강을 비관과 슬픔으로 덧칠한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를 바라며 자신과 나라의 갱생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놓지 않는다. 또한, 천천히 자신의 자리에서 신학을 공부하며 다양한책을 정독하며 사색과 묵상 그리고 정리를 일기에 구체적으로 해나가며 자신만의 신앙의 결을 만들어간다.
윤치호의 신앙은 먼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었다. 그는 일기에서 늘 하나님께 자신의 상황을 토로하고, 스스로 답을 찾기 위해 애쓴 믿음의 사람이었다.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 국제적 죄악을 개인적 죄악의 심화라고 보았으며, 원죄의식에 대한 이해도가 있었고, 여러 죄악들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점점 나아지게 하실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살았다. 삶과 동떨어진 신학은 부인하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경계 안에서 자신과 남을 위해 살기를 부단히 노력했던 신학자이자 신앙인이었다.
윤치호가 맺은 신앙의 특성을 종합하면 '남을 위한 삶'이다. 그의 신앙은 삶의 동력이었다. 삶에서의 경건과 성실 그리고 정리된 계획은 이를 구체적으로 이루게 하는 방편이었다. 미국에서의 학업을 마친 후 그는 귀국을 결심한다. 그곳에서 계속 수학하며 성과를 거두거나 상하이 중서서원에서 얼마든지 교편을 잡고 지낼 수 있었지만, 조국을 위한 사명을 스스로 펼치기를 결심하며 자발적으로 귀국한다. 그에게는 늘 나라를 향한 개혁의 소망이 있었다. 이는 그를 변화시킨 기독교의 힘,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생명과 자신을 변화시킨 성령의 능력이었다.
그러나 일제의 끈질긴 간섭과 요구, 시대적 상황은 윤치호를 친일로 전향하게끔 이끈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자리에서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믿음을 지키고 순종을 노력한 신앙인이었고, 이를 일기가 증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