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姜夔 : 1163-1203)는 중국의 남송시대에 활동했던 서예학자로, 서예이론서인 『속서보(續書譜)』 20조목을 저술하여 서예역사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본 논문은 『속서보』 원문을 역주한 것으로, 그 요점과 서예사적 의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강기는 북송시대의 '상의(尙意)'적 서예의 말류 현상을 극복하고자, 위(魏)·진(晉)의 고법(古法)으로 복귀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는 서예를 실리적·세속적 의미에서 벗어나 서예 자체의 예술성을 논술하였다. 서예기법적인 측면으로 볼 때, 『속서보』는 고전 서예기법의 교량적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데, 이는 바로 위·진 고법의 회복을 주장한 데에 있다. 즉, 서예미학의 발전과 역사 및 그와 유관한 문제에 대해 계통을 세우는 등 세밀한 분석과 연구를 통하여 서예에 대한 본질적 견해를 집약하였다. 이러한 강기의 서론은 일견 복고적이라고 간주할 수 있으나, 반대로 생각하면 당시 서예의 병폐를 직시하여 새로운 출구를 마련하려는 진보적 서예정신의 피력이라 할 수 있다.
『속서보』는 전체적으로 「총론(總論)」·「진서(眞書)」·「용필(用筆)」·「초서(草書)」·「용필(用筆)」·「용묵(用墨)」·「행서(行書)」·「임모(臨募)」·「서단(書丹)」·「정성(情性)」·「혈맥(血脈)」·「방원(方圓)」·「향배(向背)」·「위치(位置)」·「소밀(疏密)」·「풍신(風神)」·「지속(遲速)」·「필세(筆勢)」등 18조목으로 나뉘어 있다. 다만 '용필'의 조목을 「진서」와 「초서」로 세분하여 결과적으로 20조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내용을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다. 「총론」에서는 해서·행서·초서의 근원이 충전·팔분·비백·장초에서 비롯되는 것을 밝히고 있다. 「진서」에서는 평정(平正)을 중시하는 일반적인 견해에서 벗어나 진서의 용필이 중용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초서」에서는 점·획의 경우 신중하게 처리하여 법도를 잃지 않는 가운데 필의를 가볍게 해야 한다고 하였다. 「용묵」에서는 각 서체를 쓸 때 사용하는 먹의 농도를 달리해야 한다고 하였으며, 「행서」에서는 비록 행서라 할지라도, 각각 정해진 격식에 드러맞을 것을 강조하였다. 「임모」에서는 임서는 옛사람의 구성을 잃기 쉬우나 반대로 옛사람의 필의를 많이 얻을 수 있고, 모서는 옛사람의 구성을 얻기 쉬우나 반대로 옛사람의 필의를 많이 잃는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서단」에서는 마른 것을 뛰어난 것으로 보았다. 「방원」에서는 진서는 모나고 초서는 둥근 것이 본체라고 보았다. 「향배」에서는 필묵의 기법과 장법과 결구의 중요한 문제를 거론하였다. 「위치」에서는 글자의 경중을 살펴, 크고 작은 것을 헤아려 서로 조화롭게 할 것을 주장하였다. 「지속」에서는 용필 과정에서 빠르고 느린 관계의 유기적 배합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소밀」에서는 서예에서 공간 처리의 변증관계를 밝혔다. 「풍신」에서는 '풍신'은 서예 작품의 '의젓한 모습'을 가리키며, '풍신'의 형성은 서예의 각종 요소를 종합적으로 융합해서 구성한 결과라고 여겼다. 「필세」에서는 글씨를 쓸 때 여러 가지 점·획이나 획에서 드러나는 형세를 파악할 것과, 운필할 때 필봉이 왕래하고 선회하고 움직이는 추세에 대해 언급하였다. 「정성」에서는 서예를 순수예술의 입장에서 비평적 관점을 피력하였다. 「혈맥」에서는 점과 획 사이의 호응, 필세의 연결과 조응에 대해 논술하였다.
강기는 전반적으로 종요(鍾繇)와 왕희지(王羲之)를 종주로 삼아 왕헌지(王獻之) 이하의 용필은 오류가 많다고 지적하였다. 특히 당송(唐宋) 이후는 그 폐해가 심하다고 평가하였다. 이런 관점은 분명히 서예역사상 퇴보적인 듯하지만, 오히려 추상화된 관념적 서예와 이념을 반박하고 정통에 입각하여 서법의 근거와 기준을 명확히 세우고자 하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하다.
송대 이후 중국은 이학(理學)의 성행과 문사들의 활발한 사상·예술·문화 활동으로 인해 서예는 전통적 성향에 대한 극복의 차원을 넘어 지나친 자유와 해방의 풍격에 경도되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강기는 변화의 면모 이면에 나타나는 다양한 문제점들에 대해 비판적 사고로 직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그는 송나라 '상의' 사조의 말류 현상을 극복하고, 위·진의 고법으로의 복귀를 주장함으로써 현재의 병폐를 진단하고 새로운 변화의 돌파구를 전통에서 되찾으려고 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강기의 『속서보』는 고전과 전통의 중요성을 등한하고 지나치게 창신(創新)에만 치우친 현대의 서예풍토에 대한 경종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