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17세기 조선의 주자학을 선도했던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의 서예세계를 연구한 것이다. 우암의 한문서예와 한글서예 등 서체 전반을 분석하고, 우암의 다양한 필적에 드러난 미적 요소와 그에 내재된 서예풍격을 조명하였다.
우암은 조선시대 기호학파를 이끌었던 대유(大儒)였다. 우암은 공자의 직사상(直思想)과 맹자의 양기사상(養氣思想)을 이어받았고, 주자의 직사상을 계승했으며, 스승인 김장생의 실천궁행적 직사상을 철학적으로 심화시켰다. 그리하여 임종하는 자리에서도 '직(直)'자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을 만큼 평생 '직'을 화두로 삼았다.
이러한 직사상을 토대로 우암은 서예에서 '심법(心法)'을 중시하였다. 우암은 특히 '직'을 목표를 삼아 '이직양기(以直養氣)'의 실천에 매달렸기 때문에 서예에서 심법의 표현은 곧 기(氣)의 발현과 통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우암은 필획의 형태나 서법 보다는 자신의 성정과 기질이 담긴 필의(筆意)를 추구하였다.
우암의 한문서예는 대자서(大字書)·현판서(懸板書)·암각서(巖刻書)·비문서(碑文書)·간찰서(簡札書)로 분류하여 고찰하였다. 우암의 대자서는 필법에 구애 받지 않고 운필이 정형화되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두드러졌다. 운필의 지속(遲速)에서 웅건장중(雄建莊重)함을 느낄 수 있으며, 기교가 절제된 고박한 아름다움과 격식에 구애받지 않는 파격미가 두드러졌다. 우암의 현판서는 조선시대 유행했던 설암체(雪菴體)와 석봉체(石峯體)에 비해 더욱 넉넉한 기상이 서려 있었다. 즉, 설암과 한호의 대자에 기초하면서도 안진경(顔眞卿)의 해서풍을 혼용하여 우암 특유의 웅장하고 호방한 서풍을 형성하였다. 우암의 암각서는 일정한 포국에 구애받지 않고 꾸밈없이 써 내려간 것으로, 호방한 심획이 천연의 마애와 조화를 이루었다. 필세가 당당하며 도학자로서 외부의 유혹에 현혹되지 않고 습속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반듯한 정신이 암각서의 필획마다 응축되었다. 우암의 비문서는 웅대하고 장중한 양강의 미를 갖추고 있었다. 필획과 자형이 넉넉하고 윤택하며, 근골이 내재되어 있어 중후함을 느끼게 하였다. 우암의 간찰서는 거리낌 없는 자유분방한 운필과 필획의 흐름 속에서도 절제의 미가 돋보이며, 특히 필획의 강약변화와 필세의 다양한 흐름에서는 역동적 기운과 필단의연(筆斷意連)의 운치가 융합되어 있다.
우암의 한글서예는 간찰로 현재 5건이 전해지고 있으며, 이 가운데 3건을 분석하였다. 능숙한 한문서예 필법을 토대로 서사한 한글편지들은 자간의 연결과 필맥의 흐름이 뛰어나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운필과 자형, 자간과 행간 등을 자연스럽게 포치함으로써 소박한 가운데 절주미가 두드러진다. 특히 한문편지와 한글편지를 비교한 결과 비슷한 자형이라도 어느 획 하나 중복되거나 동일한 표현이 없어 우암 서체의 변화무쌍한 풍격을 확인할 수 있다.
우암은 다양한 필법의 토대 위에 '직사상'을 글씨에 담아내기 위해 호방휘쇄(豪放揮灑)한 필의로써 정대(正大)한 가운데 기발(奇拔)하고 장중(壯重)한 서체를 추구하였다. 그러한 서체를 통해 강직한 성품과 웅건한 기상이 서려있는 신기융회(神氣融會)의 서예를 지향하였다. 나아가 양기를 통해 습속과 기예에 구애되지 않고 허정(虛靜)한 마음을 심획으로 구현함으로써 도예합일(道藝合一)의 경지에 이르렀다. 이러한 점이 바로 우암의 서예를 주목해야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