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통용되는 사주명리학의 적지 않은 수의 고전적 사료는 현대적 흐름에 적용했을 때 맞지 않는 이론이 상당히 많다. 따라서 본 논문은 고전 명리서에 실려 있는 사주 사례를 통해 당시 시대적 특징을 들여다봄으로써, 사주명리학의 이론적 변화를 탐구하고 발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명리학계에서 일반적으로 『연해자평』, 『궁통보감』, 『자평진전』, 『적천수천미』를 4대 명리고전이라 부르고 있다. 본 연구의 출발은 위의 4대 명리고전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 네 권은 다양한 이론과 더불어 또한 실려 있는 사주 사례도 합쳐보면 대략 1000개를 넘을 만큼 풍부하다.
수록된 사주 사례는 그 당시를 살던 사람들의 수많은 사연을 담고 있다. 사주 사례를 통해 우리는 사례자가 어떤 역사적 공간과 시간적 흐름에서 살았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사주 사례에 실려 있는 역사적 실존 인물의 삶의 궤적을 바탕으로 시대적 상황을 들여다 볼 수 있으며, 이를 통해서 시기적인 부분도 유추할 수 있다.
각 시대의 사회적 제도와 사주명리학과의 연관성을 실제 사례를 통해 고찰한다. 특히 앞서 언급된 명리고전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특정 계층에서 사유화했다는 것인데, 오랜 시간 시행된 과거제도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과거제도는 명리학의 역사와 함께 1300여 년 동안 이어져 왔다. 과거제도는 입신양명의 관문이었으며, 신분 상승의 유일한 통로였다. 이와 같은 신분 상승의 통로가 없었다면 당시 사람들은 운명의 변화도 꿈꿀 수 없었을 것이다.
고전 명리학의 이론 체계는 과거제를 통한 신분제라 할 수 있는 '정관(正官)'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전의 핵심이 되는 정관은 관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시대적 특징이었다. 고전 명리학의 이론 체계가 오랜 시간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당시의 제도적인 변화가 완만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관직을 지닌 일명 사대부들에 의해서 쓰인 고전 명리서는 명리학이 처음에는 특수한 계층의 학문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더불어 명리학에서는 작가의 사상적인 부분도 함께 어우러져 있음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성리학적 사상의 부흥기가 명리학이 학문적으로 체계화된 시점과 궤를 같이하며 명리서 전반에 사상적이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의 유교적 사상을 드러내는 작가적 관점이 사주 사례의 통변에 많이 드러나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고전 명리서에 실려 있는 사주 사례의 인물과 명칭을 통해서 정확한 시대상을 읽어 낼 수 있다. 과거제도라는 사회적 제도가 고전 명리학의 역사와 함께 하고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또한 유교적인 중심사상이 명리학의 이론 체계에 많은 영향을 주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은 조금씩 변화를 맞이하지만, 그 변화는 천 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매우 천천히 이루어졌다. 오랜 시간에 걸친 변화는 마치 정체된 듯이 고정화된 관념으로 우리 곁에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러한 4대 명리고전의 사주 사례에 나타난 시대적 특징은 신분을 중요시하는 과거적 시점과 자본의 흐름에 따른 신분의 변화를 가져오는 현대적 시점 간에는 해석 차이가 날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우리가 고전을 연구해야 하는 이유는 사주명리학의 명리 이론을 현대에 맞추어 재해석하기 위해 근간이 살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시대성이 떨어지는 이론은 과감히 탈피하고, 새롭고 다양한 영역과의 융합을 통하여 좀 더 전문성 있는 연구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변화해야만 통할 수 있고, 오래도록 살아남아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 옛것을 거울삼아 미래를 창조해 나가는 일, 21세기 명리학자의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