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은 아마도 사랑일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말도 사랑일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많은 학자들이 사랑의 교부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랑에 관하여 연구되어진 바가 거의 없었다. 이에 필자는 그의 저서 『그리스도교 교양』에서 그가 말하는 사랑을 알아보고 현 교회에 적용할 점에 대하여 상고하였다.
그가 42~43세에 쓰기 시작한 『그리스도교 교양』은 성경해석서이다. 사랑의 교부답게 사랑을 강조하고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성경해석의 기준으로 삼고자 함이다. 왜냐하면 성경저자의 정신이 사랑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정욕을 피하고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이라는 이중구조를 세우기 위함이다. 우리가 성경을 해석하려고 할 때 자칫 인간습성과 관습을 따르기 쉽다. 그는 이것을 정욕이라고 표현하고 있으며, 이것을 피하고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의 기준으로 해석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셋째는 표상적 언어를 해석하기 위함이다. 성경을 해석하려다 보면 자칫 파렴치한 행동과 패악을 명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씌여 있는 대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사랑을 기준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있어서 사랑은 질서이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그는 향유와 사용이라는 것으로 사물을 구분한다.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만이 향유의 대상이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하나님이외에 모든 사물들은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만을 향유하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사물을 등급으로 구분하고 있다. 인간은 신과 동물사이에 있다. 질서 바른 사랑이란 우리가 위를 향할 때, 즉 하나님을 향할 때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하나님만을 온전히 사랑하고, 하나님으로 인해 자기 자신과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고 결론내리고 있다. 즉 하나님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때문에 자신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자기사랑을 당연한 것처럼 말하는 구절도 있고 모든 악의 근원으로 말하는 구절도 있다. 어떤 학자는 만 악의 뿌리라고 말한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있어서 자기사랑은 어떻게 정의하고 있을까? 그는 질서 바른 사랑을 강조하고 있다. 즉 육체가 영에 반란을 일으키지 않고 종속되고, 영이 불변하는 하나님께 매달릴 때 올바른 자기 사랑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인의 본질이 사랑이며, 사랑에 있어서 질서가 아주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질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만을 향유하고 다른 것은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을 향유하려고 하기 때문에 많은 문제들이 생긴다. 이것을 현 교회 목회자들이 마음에 새긴다면 교회의 많은 문제들이 해결되리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