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으로서 행하는 사회적 활동은 생산 행위와 소비 행위로 구분할 수 있을것이다. 여기서 소비 행위란 개별적이고 개성적이며 자의적인 행위로, 소비를 유발하는 컨텐츠의 총합인 상업시설은 시대별 트렌드와 대중이 지닌 가치관의 변화를 끊임없이 읽어내며 양태를 달리해 왔다. 그렇기에 상업시설의 경쟁력은 동시대 소비자들에게 소구(訴求)될 수 있는 컨텐츠를 얼마나 보유하였는가 그리고 이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공간에 배치했는가에 의해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마주한 현재의 소비 환경은 소비를 이끌어 가는 주력 세대가 처한 변화의 양상 속에서 그 추이를 엿볼 수 있다. 온라인 상업 공간은 이제 전 세대를 아우르며 주력 쇼핑 매체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1인 가구의 증가, 인구의 고령화와 혼인 문화의 변이와 같은 사회 환경 변화는 가성비 일변도의 기존 소비 패러다임을 다양하게 바꾸어 놓았다. 이에 더해 밀레니얼 세대의 가치와 일상화된 SNS는 오프라인 상업 공간에 대한 인식을 기존과 달리했다. 이제 오프라인 상업 공간은 구매 편의를 앞세우는 온라인 상업 공간과 달리 공간 안에서의 체험적, 감성적 만족을 통해 소비자의 오감을 만족시키고 소비자가 머무는 공간으로 진화되어야만 할 것이다. 특히 국내에서는 백화점 및 복합쇼핑몰과 같은 대규모 상업시설이 소비자의 환경 전반에 깊게 자리잡고 있으므로 공간적 변화가 유발하는 효과는 더욱 클 것이다.
공간에서의 체험적 가치는 전체 구조와 배열의 시각적 효과, 동선이 유발하는 새로움, 그리고 그 안에 담겨진 스토리와 이미지로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감성적 가치는 신체적 자극과 심리적 반응, 비일상성으로 나누어 볼 수 있으며 오감을 자극하는 요소와 장소가 지닌 맥락과 상징성, 그리고 미학적 요소의 완성도 등으로 가늠할 수 있다. 이의 분석 틀을 활용하여 국내의 주요 대규모 상업시설의 여섯 가지 사례를 분석해 보았다.
체험적 관점에서 볼 때, 상업시설은 규모의 대형화 추세에 따라 많은 테넌트를 입점시킬 수 있지만, 넓은 동선 탓에 피로감과 지루함을 유발하기 쉬웠으며 동선 체계는 이를 상쇄하기에 제한적이었다. 그리고 공간 내 중심지역에 소비자를 응집시키고 다시 순환시킬 수 있는 체험형 테넌트가 없으며 단지 시각적 자극에 그치는 보이드 공간 만이 존재하여 단조로움을 더하고 있다. 체험적 프로그램도 일부 엔터테인먼트 시설에 지나치게 의존하여 다양성을 저해하고 있으며 인접 지역과 연관된 어떤 커뮤니티 컨텐츠도 없다는 점 또한 체험적 가치를 제약한다. 감성적 관점에서 보면, 오감을 자극하는 요소는 시각적 자극에 그쳐 공간의 역동성을 불러 일으키지 못하며, 공간 안에서 장소성과 상징성을 드러내는 요소는 극히 제한적으로 연출되어 있었다. 미학적 요소는 외관과 내부 시설에서 웅장하게 드러났으나 내부 프로그램과의 연계가 적어 설득력이 낮았다.
본 연구에서는 대규모 상업 시설 안에서의 체험적 가치와 감성적 가치 증대를 위해서 세 가지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첫째, 상업시설의 수평적 · 수직적 매장 구성 방식을 변경하여 종적 통일성과 횡적 다양성을 확보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짧은 동선 안에서 평면 상 프로그램의 다양한 변화를 연출할 수 있어 소비자의 체험적 가치를 증대시킬 수 있다. 둘째, 큐브 형태의 건물을 분할하여 외부 공간과 내부 공간의 접점을 확대한다. 이로써 내부 동선의 단조로움과 보이드로 국한된 수직적 요소, 자연광의 부족함을 탈피하고자 한다. 분할된 건물들 사이로 고객이 순환될 수 있는 골목을 만들고, 외부 접점 부위로부터 자연광의 유입을 늘려 감성적 가치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소비자가 직접 체험할 수 있고, 구매를 통해 상생에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적극 도입한다. 기능적 편의나 상품의 취득에서 오는 만족감을 넘어 개인적 가치의 실현, 보다 심도 깊은 체험적 만족을 자극하여 상업 공간으로 발길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 트렌드를 선도하고 선망의 대상이었던 백화점의 위상과 달리 이제는 온라인 상거래의 일반화와 쇼핑 플랫폼의 확대, 레져 산업의 다양화 등으로 오프라인 공간을 근간으로 기능하는 대규모 상업시설은 변화의 기로에 섰다. 소비자가 이전과는 다른 개념으로 상업 공간을 인식하면서 이제 상품의 집결, 서비스의 차별화는 더 이상 고객을 유인하는 요소가 되지 못한다. 대규모 상업시설이 소비자에게 체험적, 감성적 만족을 선사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할 때 비로소 소비자에게 방문의 당위를 제공할 것이며 오프라인 상업 공간으로서 존립해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 증명할 수 있으리라 본다.